2021. 3. 18.

③ 북한이 인민을 대하는 방법

2. 민심을 살핀다

 

 

김일성 주석은 경제발전을 위한 관건은 국민에게 있다고 여겼다.

 

“우리 인민은 우리 당의 영도 하에 자기의 창발성과 헌신적 노력으로써 모든 난관과 애로들을 극복하여 왔으며…”

- 김일성 주석이 1956년 4월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에서 한 사업보고

 

그런데 당시 북한 국민들 속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있었다.
 
한국전쟁 때 입은 마음의 상처가 아직 다 가셔지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 국민 중에는 한국전쟁 당시 치안대라는 조직에 가담해 미군을 도운 사람도 있었는데, 북한 국민들 중 일부는 이 치안대 가담자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었다.

그리고 남과 북이 나뉘어 있던 상황에서 남한에 포로로 잡혀 있다가 돌아온 귀환병과 월남한 사람들의 가족들도 있었다.

일부 북한 국민들은 이런 귀환병과 월남자의 가족들을 미국의 간첩 등으로 의심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북한에서는 한국군과 미군이 후퇴할 때 함께 월남하려다가 실패한 사람이 북한에 숨어 지내다가 발각되는 경우도 있었고, 미국의 지시를 받아 공장 설비를 파괴하는 일도 일어나곤 했다.

그런데, 귀환병, 월남자 가족 중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도 편견과 차별을 받게 되었다.

강선제강소의 노동자 진응원은 귀환병 출신이라서 의심을 받았던 사례이다.

소설 ‘인간의 노래’에는 강선제강소의 책임자가 노동자 진응원을 교대반장에 임명하려 하자 한 간부가 이렇게 대꾸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대반장이 큰 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심사숙고해서 사람을 골라 그 자리에 앉혀야지요. 진응원이는 귀환병이 아닙니까. 귀환병이라 해서 못 믿을 건 없지만 안기호 같은 좋은 당원을 떼고 귀환병 출신을 대신 교대반장 시키는 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고쳐지지 않으면 진응원 같은 사람은 북한 정부에 반발심을 갖고 경제발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게 될 것이다.

북한은 국민들을 화합하고 융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일성 주석은 간부들에게 출신이 나쁘거나 과거에 죄를 지었더라도 오늘날 성실하게 일한다면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성분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실지 사업에서 검열되었으며 현재 자기 맡은 사업을 성실하게 집행한다면 그들에게 또 무엇을 요구하며 추구할 것이 있겠습니까?
- 김일성 주석이 1956년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에서 한 보고

-편집부, “북한 ‘조선로동당’대회 주요문헌집”, 돌베게, 1988년, 151쪽

 


‘출신’이나 ‘과거의 죄’는 월남자의 가족, 귀환병, 그리고 과거 지주였던 사람이나 자본가까지도 포함되었다.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조선노동당은 각 군의 당위원회가 치안대에 가담했던 사람, 월남자 가족, 포로 귀환자를 조사해 포용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하도록 했다.

리당위원회와 인민위원회 간부들이 나서서 가가호호 방문하고 국민들 사이에 있는 갈등과 감정을 풀어주었다.

김일성 주석의 정책은 북한 국민의 호응을 얻은 듯하다.

1948년 73만 명가량이었던 조선노동당 당원은 1956년 1월 1일 116만여 명, 천리마운동 후인 1961년에는 131만여 3명으로 확대되었다.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와 제4차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이 한 보고

 


북한이 민심을 살펴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니 북한 국민들 사이에서 조선노동당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것이다.

조선노동당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자 국민들은 조선노동당이 호소하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앞서 소개했던 진응원 역시 일부 사람들의 의심에도 교대반장으로 임명되었고 훗날 노력영웅 칭호를 받는다.

더 나아가 진응원은 천리마작업반운동을 직접 제안한다. 

천리마운동을 거치며 북한은 “어떤 복잡한 계층이라도 능히 포섭하고 교양 개조할 수 있는 강유력한(강력한) 당”이 되었다며 앞으로 “전체 인민의 단결을 일층 강화할 것이며 전 사회에 신뢰와 화목의 분위기가 지배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편집부, “북한 ‘조선로동당’대회 주요문헌집”, 돌베게, 1988, 251쪽



북한은 민심을 적극 헤아렸던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본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이후로도 북한의 간부들에게 민심을 얻고 국민들과 더 가까이에서 일하도록 늘 현지에 내려가라고 강조했다.

국민과 가깝게 지내며 나라를 이끄는 북한 특유의 ‘현지지도’ 정치가 본격화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