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4.

지금 세계정세에는 근본적인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세계를 주도해 온 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였다. 그런데 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미국은 이 위기를 극복하려 북한, 중국, 러시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한,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반제자주 국가 사이의 신냉전 대결 구도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향한 제재와 봉쇄를 강화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내세운 ‘가치동맹’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 가치동맹엔 신냉전 대결 체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에 맞서 북·중·러가 3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주의·반제자주 진영은 세 나라가 각각 자기 힘을 키우면서 미국과 서방세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그리고 세 나라가 서로 연대와 공조, 지원과 지지의 기운을 높이고 있다.

이 대결에선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반면, 북·중·러가 공세를 펴며 세계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형세가 펼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살펴보려 한다.

 


 

 

1. 아프간전에서 미국이 비참하게 패배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01년 9월 11일 비행기가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으로 돌진해 빌딩을 붕괴시키는 충격적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됐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수장으로 있는 알카에다를 지목하고 아프간 정부에 빈 라덴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당시 아프간 정권을 잡고 있던 탈레반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2001년 10월 7일 아프간 폭격을 시작으로 아프간전에 돌입했다.

아프간 전쟁은 장장 20년 동안 지속되었고 이제야 그 끝이 보이고 있다. 2020년 2월 29일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해 2021년 5월까지 철군하겠다고 약속했다. 2021년에 출범한 바이든 정권은 9월 11일까지로 일정을 다소 미뤘고 현재 철군 중이다.

그런데 미군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패배를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7월 2일 미군이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야반도주한 것이다.

바그람 기지는 아프간 최대 미군기지다. 건설에만 9천 6백만 달러, 약 1천억 원을 들여 건설했다. 미군과 그 가족 등 10만 명이 생활했다고 한다. 한국의 평택 미군기지에 비견될만한 규모다.

미군은 바그람 기지에서 하루 밤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철수해버렸다. 그 과정에서 수천 대의 차량과 장갑차 수백 대 등 350만 개나 되는 물품을 버리고 갔다. 워낙 비밀리에 철수하는 바람에 바그람 기지의 아프간군 사령관인 미드 아사둘라 코히스타니 장군은 “미군이 떠난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우리는 (미군이 떠난 다음 날인) 아침 7시가 돼서야 미군이 이미 바그람을 떠난 사실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프간군이 식사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고 식수 공급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미군이 물품을 그대로 두고 떠나는 바람에 아프간 민간인이 기지에 들어가 물품을 약탈해 판매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프간군은 언론 인터뷰에서 “그들이 탈레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라며 긴장했던 당시 심정을 밝혔다.

미국이 왜 장갑차까지 내버려 두고 황급히 야반도주했을까? 선뜻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다.

어떤 이는 미군이 물품을 두고 간 건 단지 아프간군에 무기를 넘겨주기로 합의했기 때문이 아니냐고 추측한다. 또 어떤 사람은 운송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기 때문에 무기를 놓고 간 거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그런 사유라면 미군이 자기 물품과 무기를 공식적으로 아프간 정부군에 인도해주고 가면 되는데 미군은 그러지 않았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는 주장은 미군이 매우 심각한 군사적 위기를 다급하게 맞닥뜨렸다는 것이다. 추론일 뿐이지만 탈레반이 곧, 정말로 곧 기습한다는 정보를 얻었는데 그 피해가 상당히 심각할 것으로 판단됐다면 미군으로선 몸만이라도 황급히 피하는 게 고작일 수 있다.

아프간 최대 미군기지에서 미군이 철군하자 탈레반은 빠르게 아프간을 장악했다. 이는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였다. 올해 6월 미 정보당국은 미군 철수 후 18개월은 지나야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할 거라고 예상했다. 7월 중순이 되자 미군은 30일에서 90일이면 카불이 함락될 것 같다고 예측을 수정했다. 실제로 카불이 함락되는 데 걸린 시간은 미군이 바그람 기지에서 철군한 후 40일만이다. 탈레반은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기도 전에 아프간 수도 카불과 대통령궁을 접수하고 승리를 선언했다.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된 아프간의 모습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과 아프간 친미세력 사이엔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우선 미 정치권에서 날 선 책임 추궁이 일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철수가 아닌 완전한 항복”이라며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발생하도록 한 것에 대해 불명예 퇴진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의 정치지도자들이 포기하고 도망갔다”라며 책임을 아프간 정부에 돌리는 궁색한 태도를 보였다.

아프간에서는 미국과 친미정부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아프간을 탈출하려 하면서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미 수송기에 타려고 달려들었고 어떤 사람은 이륙하는 수송기 바퀴에 매달렸다가 하늘에서 떨어져 추락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국은 헬기를 동원해 미국 대사관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기도 했다. 이 장면은 베트남전을 연상시켰다. 1975년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후 헬기를 동원해 사이공에 있는 대사관에서 사람들을 탈출시켰다. 이 사진은 베트남전을 상징하는 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이 장면이 2021년 아프간에서 재현되었다.

비교하자면 아프간 상황이 베트남전보다 더욱 심각하다. 베트남전에서는 미군이 철수하고 2년이 지나서야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점령했다. 헬기 탈출 사진도 사이공이 점령될 때의 일이다. 그런데 아프간에서는 미군이 채 다 철수하기도 전에 아프간 수도 카불이 함락됐다.


 

▲1975년 주사이공 미국 대사관 모습. 사람들이 사이공에서 탈출하기 위해 헬기에 탑승하고 있다

 

▲(위)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사이공에 있는 미 대사관에서 탈출하는 장면 (아래) 2021년 8월 15일 아프간 카불에 있는 미국 대사관의 모습



 

2. 아프간전 20년간 미국의 피해



아프간전은 미국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미군 사망자만 2천 5백 명, 미군 직원까지 합치면 사망자는 6천 명을 넘는다. 나토도 1천 1백 명 이상이 사망했다.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은 6만 6천 명이, 아프간 민간인은 4만 7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이 아프간전에 쏟아부은 돈은 2조 달러다. 2조 달러는 미국의 부채이기 때문에 이자가 발생한다. 브라운 대학교는 2050년까지 발생할 이자만 총 6조 5천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이렇게 피해가 심각하다 보니 미국은 아프간전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미국이 피해가 컸어도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안착시켰으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아프간 정권은 탈레반에 의해 붕괴되기에 앞서 자체적으로 몰락하고 있었다.

2019년 아프간 대선 사례를 살펴보자. 당시 대선에선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2위 후보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래서 2020년 3월 9일 아프간엔 1, 2위 후보가 제각기 대통령 취임식을 열어 두 명의 대통령이 난립하는 막장드라마가 펼쳐졌다.

미국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중재에 나섰는데 그 결말도 황당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부정선거 여부를 판명해 당선인을 가리면 될 텐데 실제로는 1위 후보가 대통령을 하고 2위 후보는 내각 구성권을 갖기로 권력 분할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사건이 종결됐다. 아프간 권력은 기득권층끼리 짬짜미로 나눠먹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리도 횡행했다. 2009년 당시 아프간 대통령인 하미드 카르자이는 “이 나라 정치인들은 돈으로 모든 것을 얻었다”, “세계 은행 금고는 아프가니스탄 정치인 돈으로 가득 찼다”라며 부정부패를 꼬집었다. 좋은 연설이지만 이런 연설을 한 카르자이 대통령 자신은 깨끗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연설을 한 카르자이 대통령의 동생은 아프간 마약왕으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2010년엔 카불은행 회장이 은행 자금으로 두바이에 호화빌딩을 사는 등으로 1억 6천만 달러를 남용하고 총 3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안기는 사건이 일어났다. 카불은행의 보유자산이 1억 2천만 달러에 불과했으니 카불은행의 자산보다 더 큰 손실을 입힌 셈이었다.

얼마 전까지 아프간 대통령이었던 가니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가니 대통령은 현금 2억 달러를 들고 탈레반을 피해 도주해버렸다. 대통령 대변인에 따르면 가니 대통령은 국방 요원들과 회의를 하고 오겠다고 말한 뒤 슬그머니 도주했다고 한다. 가니 대통령은 차량 4대에 현금을 가득 채워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돈을 헬기에 실으려고 했지만 다 들어가지 않아 일부를 활주로에 남겨둔 채 떠났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아프간 정부가 이 모양 이 꼴이다 보니 이미 정부는 통치력이 아프간 영토의 60% 정도까지만 미치는 상황이었고 사실상 카불을 중심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탈레반은 8월 22일 알자지라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당초 정치적인 해결책을 찾기를 원했고, 카불 점령은 계획되지 않았다”라면서 “당시 아프간 정부군이 떠나면서 카불을 버렸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카불의 통제권을 넘겨받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 아프간 대통령궁을 점령한 탈레반




3.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은 과연 성과를 얻었는가



미국이 막대한 피해를 보면서도 아프간 전쟁을 20년이나 지속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하나는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이끌던 알카에다를 제거하고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는 것이다. 둘째는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1) 빈 라덴, 알카에다, 탈레반 제거



먼저 빈 라덴과 알카에다 제거, 탈레반 정권 축출의 측면을 보자.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테러 배후로 지목해 제거하고 탈레반이 이들을 비호한다며 축출하고자 했다. 미국은 아프간전 개시 두 달 만에 탈레반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고 2011년 5월 빈 라덴을 사살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빈 라덴과 알카에다 제거, 탈레반 정권 축출이 미국의 1차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미군을 철수시키는 건 아프간전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8월 16일 “우리는 20년 전 9월 11일에 우리를 공격한 이들을 잡고 알카에다가 아프간을 공격기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표를 갖고 아프간에 갔다. … 우리는 그것을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실제로는 자신이 내세운 전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미국은 빈 라덴 제거엔 성공했다. 그러나 알카에다를 제거했는지는 의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8월 17일 알카에다가 탈레반에 축하 인사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알카에다가 아직 존재한다는 정황이 있는 것이다.

AP통신은 미국 정부와 군 수뇌부들이 앞으로 미국이 테러단체의 공격을 받게 될까 봐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8월 15일 미 상원 의회에서 테러단체들을 대하는 기존 전략을 보완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미국은 9.11테러를 응징하고 재발을 막겠다고 했는데 이에 실패하고 또다시 두려움에 떨게 됐다.

그리고 미국은 탈레반 정권 축출에도 실패했다.

결국 미국이 확실히 달성한 목표는 빈 라덴 제거 뿐이다.

 

2) 아프간에 친미정권 수립



미국의 목표는 빈 라덴과 알카에다 제거, 탈레반 정권 축출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목적이 이것뿐이었다면 미국은 2011년 5월 빈 라덴이 사망했을 때 전쟁을 끝냈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 후로도 아프간전을 지속했다. 이는 미국이 2차 목표를 갖고 있었다는 걸 알려준다.

미국의 2차 목표란 바로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수립하고 안착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20년 동안 전쟁을 지속할 만큼 2차 목표를 더 중요한 과제로 여겼다.

미국이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려고 한 이유는 첫째로 아프간의 자원을 차지하고 둘째로 아프간을 자신들의 전략거점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먼저 아프간엔 전략 자원이 많다. 대표적인 아프간의 자원은 바로 희토류다.

희토류는 17개의 화학원소 물질을 통칭하는 말이다. 각 희토류 원소들은 각자 독특한 전자기적, 광학적 성질을 갖기 때문에 첨단산업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중국 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은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희토류는 중요한 전략자원이다. 북한에도 희토류가 많이 있다. 주아프간 한국대사관은 아프간 내 희토류 매장량이 140만 톤에 이른다고 밝혔다.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2차 전지 원료인 리튬도 전략광물로 꼽힌다. 리튬의 경우 아프간이 세계 최대 매장국일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에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희토류를 포함한 아프간 광물의 가치는 1조 달러에서 3조 달러로 추정된다. 2010년 미국 지질조사국은 아프간이 광물 자원을 개발하면 10년 안에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프간은 자원의 이동 통로로도 중요하다.

중동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의 이름은 카스피해로 바다 이름이 붙어 있다. 호수가 바다로 불리게 된 데는 사정이 있다. 국제법에는 호수에 있는 자원은 연안국들이 균등하게 나누게 되어 있는데 바다에 있는 자원은 연안 면적에 비례해 배분하게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카스피해 연안국들이 자원 배분 문제를 두고 십수 년간 갈등을 빚은 끝에 ‘특수 지위 바다’로 규정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카스피해는 호수인데도 바다로 불리게 되었다.

이 카스피해에는 막대한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 카스피해 자원은 러시아 가스관을 통해서만 수송이 되고 있었다. 미국은 카스피해에 매장된 천연가스를 탐내고 투르크메니스탄-아프간-파키스탄을 통과하는 관을 연결해 천연가스를 가져가려 했다.

카스피해 가스관은 개전 당시부터 미국의 아프간 침공 배경으로 지목되었다. 최윤정 세계지역연구센터 연구원은 “9.11테러 사태와 아프간에 대한 보복전쟁이 개시되기 훨씬 이전에 국제정치무대에서는 탈레반 정권을 파괴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최윤정 연구원은 미국은 9.11테러 이전인 2001년 7월에 열린 G8 회의에서 탈레반 붕괴 후 아프간 정권 수립 계획을 논의했고 개전 직후인 2001년 10월부터 가스관 연결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아프간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친미정권을 수립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던 것이다.


 

▲카스피해와 그 주변 나라들. 빨간 표기가 되어 있는 곳이 카스피해다




또한 미국은 아프간을 중앙아시아 전략 거점으로 활용하려 했다.

아프간은 중요한 지리적 가치를 갖는다. 아프간은 유라시아의 정중앙에 있다. 중국,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다. 중국,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인도와도 가깝다.

미국은 아프간을 대중국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선 미국은 아프간이 중국의 신장 위구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신장 위구르의 분리주의 운동을 부추길 수 있다. 신장 위구르는 아프간과 같은 수니파 이슬람세력권이다.

실제로 미국은 아프간을 통해 신장 위구르 분리주의 운동을 성장시켰다. 문일현 중국정법대 교수는 “사실 20년 전에는 신장 위구르 내 독립 세력들의 활동은 크게 심각하지 않았다. … 20년 전과 비교해보면 신장 독립주의 세력들에 대한 외부 지원이 더 은밀해지고 규모도 커졌다”라고 지적했다. 신장 위구르 분리주의 운동이 활발해진 건 미국이 아프간을 장악한 후인 2008년 즈음부터다.

미국은 반미국가에 여러 공작을 펼친다. 북한을 상대로는 한국의 탈북단체를 동원해 대북전단을 살포한다. 한국은 미국의 대북 공작 거점인 셈이다. 미국은 시리아에선 반군을 지원해 육성했다. 미국은 홍콩의 분리주의 운동도 지원했는데 홍콩 주변엔 배후거점으로 삼을 만한 곳이 없었다. 만약 홍콩 주변에 미국의 배후기지가 있었다면 홍콩 사태의 양상도 사뭇 달랐을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이 아프간에 머물면 신장 위구르 반군을 조직해 중국에서 내전을 일으킬 수도 있다. 중국은 아프간을 통한 신장 위구르 분리주의 운동 활성화를 막고자 2018년 아프간과 신장 위구르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프간을 친미로 만들면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을 방해할 수도 있다.

일대일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현대판 비단길(실크로드)을 만들려는 중국의 구상이다. 문일현 중국정법대 교수는 “(일대일로를 추진하기 위해) 중앙아시아와 중동으로 뻗어가려면 반드시 아프간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미국이 아프간을 통제하면서 사실 일대일로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아프간을 장악할 경우 크게 우회해서 지나가야 하므로 일대일로 계획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자 일대일로 사업도 활기를 더해가고 있다. 중국의 글로벌타임스는 8월 16일 “중국은 아프간 개발에 기여할 수 있으며 앞서 제안한 일대일로를 추진해나가야 한다”라고 보도했다. 이어 “미국이 진행한 20년간의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 이제는 중국이 미래 발전을 위한 투자를 제공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아프간을 중국과 러시아를 향한 군사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신우용 군사평론가는 “이곳(아프간)을 군사 거점화함으로써 일본에서 시작하여 한국, 대만, 동남아제국, 인도차이나,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독립국가연합 및 몽골로 연결되는 중국에 대한 거대한 반달형 3면 포위망 구축을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 미국의 목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아프간을 통해 대 중국 군사 포위망 구축하려 한다는 것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은 “중국의 신장 위구르 이슬람운동, 러시아 체첸 반군운동 및 이란 반정부 시아 이슬람운동 등의 요원들이 아프가니스탄 남부 캠프에서 훈련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아프가니스탄에는 나토가 주도하는 국제안보지원군이 주둔하게 됨에 따라 러시아 입장에서는 전략적으로 불편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프간이 미국의 대 러시아 군사 거점으로도 쓰인다는 지적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아프가니스탄은 러시아의 안보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 지역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소련에서 분리된 스탄 국가들이 있어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러시아는 스탄 국가들과 군사협력을 맺는 등 연계를 강화하는 중이다. 미국이 아프간을 장악하면 스탄 국가들을 러시아로부터 떼어내는 정치공세를 펼 수 있다.

또한 아프간은 이란의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미국의 이란 공격 기지로도 쓰이게 된다. 이란으로선 불안 요소를 머리에 인 꼴이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중앙아시아에 있는 기지를 대여해 사용하려고 한다. 만약 중앙아시아 기지 마련에 실패하면 카타르나 오만 등 중동을 거점으로 군사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거리가 너무 멀어진다. 미국한테는 아프간이 이란을 상대하기 위한 최적의 기지다.

미국이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면 아프간 주변인 파키스탄과 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파키스탄은 친미와 친중을 오가는 외교를 펴고 있다. 인도도 미국의 안보협의체인 쿼드에 들어와 있지만 그렇다고 친미반중국가라고 하기엔 모호하다. 미국이 아프간을 장악하면 파키스탄과 인도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될 것이다.

유럽 입장에선 아프간을 나토의 전진기지로 활용 가능하다. 중동 방면 미국과 나토의 주요 군사기지로는 터키도 있다. 그런데 터키가 점차 친러 행보를 하면서 미국과 나토로선 터키 기지가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간에 군사기지를 확보하면 미국과 나토는 매우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아프간은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은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수립해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이 20년 넘게 전쟁을 하며 공 들여 수립한 친미정권은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미국의 완전한 참패다.

이제 아프간 상황은 미국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차지한 건 20년 전과 같다. 하지만 20년 전 탈레반과 오늘의 탈레반은 사뭇 다르다.

과거에 아프간은 소련과 전쟁을 치렀다. 1989년 소련군이 철수했고 1996년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아프간엔 소련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탈레반 정권도 반소 정권이었다. 하지만 지금 탈레반은 미국을 무찌르고 정권을 수립했다. 이제 아프간 국민도 반소가 아니라 반미 성향을 띌 것으로 보이며 탈레반도 반미-친중·친러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탈레반은 중국·러시아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탈레반은 7월 10일 러시아와 회담을 열고 “우리는 러시아 측에 다른 나라들에 위협을 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라며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권 국가들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확언했다.

7월 28일 탈레반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아프간의 어떠한 세력도 아프간의 영토를 이용해 중국에 해를 끼치는 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이 아프간 평화 재건 과정에 더 많이 참여해 향후 경제발전에 더 큰 역할을 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미국은 아프간에서 참패한 것을 넘어 커다란 역효과를 불러온 셈이다.


(계속)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