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4년 05월 17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295] 팔-이 전쟁을 둘러싼 미국과 이스라엘의 내홍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팔-이 전쟁)이 시작된 지 7개월여가 지났다.
이스라엘은 그간 미국의 무기 지원과 정보 공유를 토대로 ‘하마스 섬멸’이라는 목적으로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치러왔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집권 세력인 이슬람주의 정당이다. 그리고 가자지구는 면적이 약 365제곱킬로미터로, 부산 면적(약 770제곱킬로미터)의 절반보다 작은 지역이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아직 ‘섬멸’하지 못했고 가자지구를 장악하지도 못했다.
이스라엘은 집단학살까지 저질렀음에도, 미국은 그런 이스라엘을 옹호하고 지원했음에도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되레 두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으며 전쟁을 끝내라는 목소리가 양국 내외에서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 간 마찰, 이스라엘 내부와 미국 내부 마찰 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 어떤 마찰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곤란해진 미국과 학살국 이스라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 25일(현지 시각) 팔-이 전쟁의 즉각적인 휴전과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처음으로 통과시켰다.
해당 결의안에는 중국, 러시아 등 그동안 팔레스타인을 지지해 온 국가뿐 아니라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미국의 동맹국도 모두 찬성했다. 다만 미국은 기권했다.
중앙일보는 이와 관련해 3월 26일 자 보도에서 “외교가에선 이스라엘을 지원해왔던 미국이 결국 결의안이 통과되도록 기권표를 던진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깊어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라며 “민간인 피해가 지속되고 있는 전쟁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기점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마찰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3월 25일 미국의 기권에 반발해 백악관으로 파견하기로 했던 대표단의 방미 일정을 취소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이와 관련해 같은 날 오전 온라인 브리핑에서 이스라엘 대표단의 방미 일정 취소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네타냐후 총리가 고집하는 라파 지상 작전에 대해 “대규모 라파 지상 작전이 실수라는 우리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라며 “특히 이스라엘의 작전으로 150만 명이 그곳에서 피난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해당 지상 공격을 옳은 행동으로 볼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월 8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에 공급한 무기가 (가자지구에서) 민간인을 살해하는 데 사용됐다. 현재 이 무기는 지원이 중단된 상태”라며 “만일 이스라엘이 라파에 진입한다면, 나는 문제 해결을 위해 그간 우리가 이스라엘에 지원해왔던 무기 공급을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장관은 5월 8일 상원 세출위원회 국방분과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전쟁터에 있는 민간인들을 책임지고 보호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라파에 중대한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히 해왔다”라며 “우리는 상황을 평가했고, 고폭발성 탄약 1회분 수송을 일시 중단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굽히지 않고 있다.
길라드 에르단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4월 9일 이스라엘 국영방송 ‘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전쟁을 시작할 때부터 고마워했던 대통령에게서 나오리라 생각지 못한, 매우 실망스러운 발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에 대한 어떠한 압력도 우리 적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것으로 해석된다”라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 표를 던진 미국 유대인들이 많이 있다. 지금 그들은 주저하고 있다”라고 바이든 정부를 압박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5월 9일 소셜미디어 X에 “이미 말했듯 만약 해야 한다면 우리는 손톱만 가지고도 싸울 것”이라며 “우리는 라파 공격을 포함해 계획된 작전을 모두 수행할 만큼의 탄약을 확보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라파 공격을 반대하는 미국을 겨냥해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부장관은 “하마스♥바이든”이라는 글을 X에 올리기도 했다.
베잘렐 스모트리치 이스라엘 재무부장관은 “라파 지상 작전은 계속돼야 한다”라며 “바이든 정부의 반대와 무기 선적 중단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승리할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로 미뤄볼 때, 하마스가 ‘섬멸’되지 않고 팔-이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 같은 마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시민들
이스라엘 내에선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 10만여 명은 4월 6일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 모여 ▲네타냐후 총리 퇴진 ▲조기 총선 등을 요구했다.
시민들은 5월 4일에도 텔아비브에 모여 ▲인질 석방 협상 타결 ▲네타냐후 총리 퇴진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이날 집회에서 한 인질 가족은 “이스라엘이 라파를 공격하면 그곳에 있는 인질들이 사망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반정부 집회는 크파르 사바 등 다른 도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크파르 사바에서 열린 시위에서 “우리가 그들(네타냐후 정부)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전에 그들은 이 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라며 네타냐후 총리 퇴진을 촉구했다.
5월 13일 진행된 현충일(이스라엘 전몰장병 추념일) 행사에서는 하마스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이들의 가족과 시민들이 정부 각료들에게 야유를 퍼붓고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벤-그비르 국가안보부장관이 서부 아시도드 군 묘지에 모습을 드러내자 군중 사이에서는 “여기서 나가라! 범죄자”, “쓰레기, 너는 군 복무를 1분도 하지 않았다”라는 외침이 이어졌다. 급기야 벤-그비르 장관을 비판하는 측과 옹호하는 측 간 몸싸움과 주먹 다툼이 발생했다.
시민들은 텔아비브 군 묘지에 등장한 요아브 갈라트 국방부장관을 향해선 침묵시위를 벌였다. ‘당신의 손에 그들의 피가 묻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든 한 남성은 갈란트 장관에게 사임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네타냐후 총리도 이런 항의를 피하지 못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예루살렘의 헤르츨산 국립묘지에서 하마스를 물리치고 인질을 모두 데려오겠다고 연설했다.
그러나 시민 다수가 항의의 의미로 네타냐후 총리가 연설을 시작하자마자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YTN의 5월 14일 자 보도에 따르면, 행사에 참석했던 니르 갈론 씨는 “네타냐후는 납치되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끔찍한 전쟁을 끝낼 생각도 없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참석자인 로지 고퍼 씨는 “(정부 관계자들의) 어떤 말도 믿지 않는다. 나는 모든 정부 관계자들이 오늘 행사에 오지 말고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칸’이 지난 4월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민의 약 70%가 네타냐후 총리의 행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먼저 네타냐후 총리와 관련해 42%가 ‘즉각 사임해야 한다’라고, 29%는 ‘전쟁이 끝나면 사임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즉 71%가 네타냐후 총리가 물러나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또 전쟁 수행과 관련해선 68%가 ‘네타냐후 총리가 잘하고 있지 않다’라고 답했다.
정부와 군 관계자들 속에서도 현 상황과 관련해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헤르지 할레비 참모총장은 5월 11일 이스라엘 채널 13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가자지구 자발리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 만약 하마스를 배제한 가자지구 통치기구 개발을 위한 외교적 움직임이 없다면, 우리는 하마스 시설을 부수기 위해 이런 군사 작전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라고 성토했다.
이스라엘 채널 12는 같은 날 전략 논의와 관련해 로넨 바르 신베트(보안총국, 국내 담당 정보기관) 국장이 갈란트 국방부장관과 만났다는 사실을 털어놓자 네타냐후 총리가 화를 내면서 말싸움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신베트와 모사드(정보특수작전국, 대외 담당 정보기관)는 국방부장관이 아닌 총리 산하 조직이라며 불만을 드러냈고, 이에 대해 갈란트 장관은 “국방부장관이 전략 논의를 하는 것을 막는 것인가? 우리 말고 누가 그들과 논의하겠는가”라고 반발했다고 한다.
그러자 네타냐후 총리는 “전략 논의는 여기서만 해야 한다”라고 말했고 갈란트 장관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고 채널 12는 덧붙였다.
이러한 목소리가 이스라엘 내부에서 나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네타냐후 정부가 본인들의 장담처럼 하마스를 제압하지도, 팔-이 전쟁에서 이기고 있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 반전시위와 비판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내 여론 동향에 긴장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나는 와중에 주요 지지층이었던 젊은 층에서 군사 원조의 지속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최근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반전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시위는 바이든 정부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항의하고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네타냐후 정부를 규탄하는 천막농성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컬럼비아 대학교 등에서 반전시위를 강제진압 했지만, 시위는 오히려 전국의 대학으로 더 확산하고 있다. 특히 대학 졸업식에서도 반전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5월 12일 오전 열린 동부 듀크 대학교 졸업식에서는 40여 명의 학생이 행사장에서 집단 퇴장했다. 이들의 행동은 유명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가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을 때 이뤄졌다. 사인펠드가 하마스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 이스라엘을 공개적으로 옹호한 인사이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에서는 공화당 소속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가 연설하는 동안 졸업생 60여 명이 퇴장했고, 위스콘신대에서는 일부 졸업생이 총장의 연설 도중 등을 돌리는 방식으로 항의를 표현했다.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한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졸업생 대표는 대학 당국으로부터 보안상의 문제로 졸업식 기조연설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정치권이나 대학 측은 이제 곧 시험을 치르고 방학을 하면 시위가 잠잠해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방학이 되면 학생들의 함성이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겨레의 위 보도에 따르면,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정치권을 향하는 시위대의 확산은 1968년 베트남 반전시위를 연상케 한다. 당시의 반전시위도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시작했고 8월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로 집결했다”라며 “1968년 시카고 전당대회에 집결한 반전시위를 시카고 경찰이 강제진압하면서 유혈사태가 발생해 ‘피의 전당대회’라고 불린다. 올해도 대선이고 민주당 정부를 향하는 시위대가 몰려가는 곳이 8월의 시카고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라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행보에 항의의 의미로 분신하거나 국가 직책에서 사의를 표하는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한 여성은 지난해 12월 1일 애틀랜타에 있는 미국 주재 이스라엘 영사관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공군 병사였던 에런 부슈널은 2024년 2월 25일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대량 학살에 연루되지 않겠다”,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 등을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에서 중동 분석 업무를 담당하던 해리슨 만 육군 소령은 5월 1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링크드인에 올린 글에서 “지난 6개월간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무고한 팔레스타인 수만 명을 살해하고 기아에 허덕이게 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라고 고백했다.
국방정보국은 전 세계 군대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관이다. 만 소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등 중동지역 군대와 무장세력을 연구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만 소령은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지난 몇 달 동안 일어났고, 나의 업무와 이 끔찍한 일 사이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라며 “부끄러웠고 죄책감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자신을 ‘유럽 유대인’ 후손이라고 밝힌 만 소령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라파에서 전면전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지원 정책에 의문을 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네타냐후 총리가 확언한 것과 달리 이스라엘이 ‘완전한 승리’를 이루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5월 13일 마이애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청소년 정상회담’ 행사 강연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물리치는 ‘완전한 승리’를 달성할 가능성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현재 군사 전략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장관은 지금처럼 해서는 하마스를 뿌리 뽑을 순 없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5월 12일 CBS TV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라파를 지상 침공하더라도 그것이 하마스의 궤멸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 지상군이 대부분 철수한 가자지구 남부 도시 칸유니스 등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이 소탕한 지역에서 하마스가 부활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내에서 이러한 목소리들이 나오는 건 바이든 정부의 뜻대로 팔-이 전쟁 상황이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이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재정과 무기를 지원받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단숨에 압도하지 못한 점은 미국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더구나 이스라엘과 동일하게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 상황도 뜻대로 되지 않고 있어 난처해졌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연일 영토를 빼앗기고 있으며 머지않아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마저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
이것이 전쟁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려온 미국의 현실이다.
이인선 주권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