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1.

1. 윤석열의 검찰 꼬리표… ‘박근혜 징역 30년 구형’에 덜미


보수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르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움직임이 감감무소식이다. 검찰총장 퇴임 뒤 2개월이 지났는데 윤석열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선언’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윤석열의 꼬리표는 아직도 정치인이 아니라 ‘전 검찰총장’으로 통한다.

현재 윤석열 전 총장은 보수 야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윤석열 전 총장의 모습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에 나서 당선되려면 보수층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전 총장은 박근혜를 수사해 징역 30년을 구형한 당사자다. 여기서 바로 보수세력의 ‘윤석열 딜레마’가 발생한다. 박근혜 향수가 짙은 보수세력의 핵심 지지층에서 윤석열 전 총장을 감정적으로 지지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 개업 간판’도 내걸지 못한 윤석열 전 총장의 처지는 지난 4월 7일 재보궐선거 이후 불거지는 박근혜 사면론과도 무관치 않은 듯하다. 대구 달서병이 지역구인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당이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을 크게 비난했는데 적폐청산을 실제 실행한 행동대장은 윤석열 전 총장 아니냐?”, “윤석열 전 총장은 고해성사를 하라”라며 윤석열 전 총장을 직접 들이받고 나섰다.

서병수 의원은 “과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될 만큼 위법한 일을 저질렀는지, 이렇게까지 방치해도 되는 건지 보통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석방하는 게 바람직하다”라며 사면론을 꺼냈다. 홍문표 의원도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 쪽에 손 한번 들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사면론이 일자 윤석열 전 총장의 지지율이 꺾이고 있다. 실제로 윤석열 전 총장을 지지하는 여론은 보수세력의 핵심 지지층이 많은 대구·경북에서 크게 떨어졌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윤석열 전 총장의 지지율은 대구·경북에서 한 달 사이(3월 26~27일 조사에서 56.8%, 4월 23~24일 조사에서는 39.7%) 17.1%나 빠져나갔다.

박근혜 사면론에 지지율이 이토록 출렁인다는 건 그만큼 윤석열 전 총장을 지지하는 기반이 부실함을 보여준다. 앞으로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면 윤석열 전 총장의 지지율은 삽시간에 굴러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박근혜 사면론을 부각하면 할수록 더 많은 국민의힘 지지층이 고개를 돌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윤석열 전 총장이 ‘박근혜 수사와 구속이 과했다’라는 식으로 대국민 사과를 내놓으면,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중도·무당파 민심은 윤석열 전 총장에게서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윤석열 전 총장으로서는 보수세력(집토끼)을 잡으려면 중도·무당파(산토끼)는 포기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어느 한쪽을 포기하면 국민의 지지를 모을 수 없고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이야말로 ‘윤석열의 딜레마’다.

2. 윤석열, 안철수 없이 승리할 수 없는 보수세력의 처지


최근 보수세력은 윤석열 전 총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온통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명색이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외부 인사’인 윤석열 전 총장에게 구애하는 희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국민의힘으로선 보수세력의 ‘큰형님’인 만큼 자기 당에서 여론의 흥행을 끌 만한 대선주자를 찾아서 키워야 한다. 그런데 정작 국민의힘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바깥사람인 윤석열, 안철수 이야기뿐이다. 

국민의힘이 이렇게까지 윤석열 영입, 국민의당과의 합당 등 단일화에 매달리는 건 국민의힘에 윤석열 전 총장만 한 지지를 받는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5월 10일 기준, 국민의힘 내부에는 지지율 5%를 넘는 대선주자가 전혀 없다. 여러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그나마 국민의힘 복당을 선언한 무소속 홍준표 의원이 4%~7%대로 지지율이 잡히고,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의 지지율은 2%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모습이다.

촛불혁명을 거치며 국민의힘의 지지층은 태극기 모독부대로 대표되는 수구·극우세력으로 축소됐다. 그래서 지난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 4차례 치러진 전국단위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대참패를 면하지 못했다. 국민의힘에서 마땅한 자체 후보를 키워내지 못하고 외부 인사 영입에 눈을 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차기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은 너도나도 ‘윤석열 바라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도 정작 당대표 후보로 나선 당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조해진 의원은 “윤석열 전 총장과 간접적 소통채널이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 경선에서) 불리한 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경쟁의 조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충남 홍성군·예산군이 지역구인 홍문표 의원은 “나는 충청대망론으로 주목받는 윤석열 전 총장과 함께할 적임자”라고 자신을 홍보했다. 

검찰 출신 초선 김웅 의원은 “당대표가 되면 윤석열 전 총장을 반드시 모시고 오겠다”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키즈’로 알려진 이준석 전 최고위원 역시 “(윤석열 전 총장이) 결국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전 총장을 향한 국민의힘 당대표 주자들의 구애가 하도 낯 뜨거워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다. 

현재 조중동을 비롯한 적폐언론은 윤석열 전 총장의 사주, 관상, 친구 관계, 아버지를 극진히 모신 사연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억지로 기사화해 보도하고 있다. 국민의힘 후보들이 말 그대로 ‘죽을 쑤고’ 있으니 적폐언론으로서는 윤석열 전 총장이라도 띄워줘야 하는 판이다.

한마디로 국민의힘은 ‘대선 후보 전멸 상태’다. 

이밖에 국민의힘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영입·국민의힘-국민의당 간 합당에 공을 들이는 흐름도 있다. 지난 재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간 단일화·합당설이 나온 것도 국민의힘만으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대선 국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보수세력 전반에서는 후보 단일화를 통한 중도·무당파 포섭 없이 대선에서 승리할 방법이 없다는 위기감이 매우 강해 보인다.

3. 여전히 민주개혁세력이 유리하다


후보 단일화는 과거에 민주개혁세력이 승리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 꺼내든 패였다. 대표 사례로 각각 15, 16대 대선에서 단일화를 통해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꼽아볼 수 있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40.27%를 득표했다. 2위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38.75%를 얻었으니 그야말로 가까스로 대통령이 된 셈이다. 김대중 후보는 김종필 자민련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열세를 뒤집고 당선될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도 단일화를 통해 오차범위 이내 표차로 당선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를 20여 일 앞두고 정몽준 통합21 후보와 극적으로 단일화했다. 그 결과 선거 당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48.91%를 득표해, 46.9%를 득표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아슬아슬하게 눌렀다. 대선 막판에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지지’를 철회하는 소동이 있었음에도 후보 단일화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단일화를 통해 힘들게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개혁세력과는 달리, 친일·독재 보수세력의 지지세는 무척 견고했다.

14대 대선 당시 보수세력은 후보가 3명이나 나와 표가 갈렸지만 김영삼 후보가 무난하게 당선됐다. 대선 결과를 자세히 보면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는 41.96%,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는 16.32%, 박찬종 신정치개혁당 후보는 6.38%를 얻었다. 보수 후보 3명을 합친 득표율은 64%를 넘었다. 김영삼 후보는 보수 분열이라는 불리한 구도에서도 2위인 김대중 민주당 후보를 8.14% 표차로 여유 있게 따돌리며 당선됐다.

17대 대선 결과도 14대 대선과 비슷하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후보가 대선에 나와 표가 나뉘었는데도 정동영 후보를 압도하며 당선됐다. 당시 보수세력인 이명박, 이회창 두 후보의 득표율 총합은 63%를 넘었지만 정동영 후보의 득표율은 고작 26.15%에 머물렀다.

과거와 비교해보면 단일화를 둘러싼 정치 지형은 정확히 반대가 됐다. 민주개혁세력에서는 단일화 얘기가 거의 없지만, 보수세력에서는 단일화가 없으면 반드시 패배한다는 목소리가 물밀 듯이 쏟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단일화 없이는 승리 없다’는 보수세력의 처지는 우리나라 정치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그만큼 촛불혁명과 박근혜 탄핵을 거치며 수구·극우로 대표되는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기반이 크게 허물어졌음을 뜻한다.

과거 민주개혁진영이 승리의 열쇠로 삼던 단일화 패를 보수세력이 슬그머니 가져다 든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사실, 보수세력 내부에서는 자칫하면 이대로는 싹 다 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지 않을까. 

지난 5월 3일,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년 뒤 (대선에서 지면) 국민의힘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라고 한 말도 이 연장 선상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 보수세력은 윤석열, 안철수 같은 인사와의 단일화 없이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는 진창에 빠졌다. 그렇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속이 빤히 보이는 무리수가 남발한다. 이러한 보수세력의 발버둥은 적폐언론의 ‘윤석열 밀어주기’를 통해서도 드러나는 듯하다.

무엇보다 ‘윤석열 당선’을 기정사실로 하는 듯한 적폐언론의 ‘윤비어천가’는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조중동에서는 윤석열 전 총장이 여론조사에서 앞서면 ‘윤석열이 대선주자 1위’라는 식으로 보도하지만, 정작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면 ‘이재명이 대선주자 1위’라는 식으로는 보도하지 않는다.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적폐세력이 한번 승리했다고 우왕좌왕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여전히 적폐세력은 벼랑 끝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신세고 민주개혁진영이 더 유리하다. 그러니 민주개혁진영은 지금 정국을 똑바로 인식하고 적폐청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적폐세력의 재집권을 막고 앞으로도 민주진보 정권이 이어질 수 있도록 힘차게 싸우자.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