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6.

벌써 2018년이 저물고 있다. 연내 김정은 국무위원장 방문을 기대하던 국민들 속에 걱정이 커지고 있다. 언론들은 연내 남북정상회담이 어렵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왜 이렇게 늦어지고 있을까?

 

연내 남북정상회담은 어디로

12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지난 4, 5, 9월 정상회담의 흐름과 성과를 이어 나가려면 이제 전면적인 남북교류협력을 합의해야 한다. 그것 없이 만나서 식사만 하는 정상회담은 이제 의미가 많지 않다. 그런데 전면적 남북교류협력은 미국의 대북제재 아래에서는 한계가 크다. 문재인 정부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지난 12월 1일(한국시각)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할 때까지 기존 대북제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은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딴 꿈을 못 꾸도록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이 늦춰지는 게 아닌지 추정된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추가 비핵화를 하면 미국을 설득해 경제협력을 추진해보겠다고 설득하고 있을 것이다. 이왕 9월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쇄 얘기가 나왔으니 그걸 선제적으로 하면 미국도 제재를 완화하지 않겠냐는 논리도 가능하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올해 핵실험장 폐기, 미사일 발사 중단 등 선 비핵화 행동에 나섰지만 미국이 그에 합당한 행동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핵화 행동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미국이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약속을 어긴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북한이 먼저 행동에 나서면 자신들도 뭔가 할 것처럼 하고서 정작 북한이 실제 약속을 지키면 갑자기 다른 조건을 제시하면서 이것까지 해야 한다고 하는 식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12월 13일 국민라디오 방송에서 ‘미국이 북한을 상대해온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미국을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도 미국의 통제 아래에서 미국을 대변하고 북한을 설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연장선에 불과한 상황이 되었다. 이런 한미 협동작전에 북한이 응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게 남북정상회담 지체의 주요인이 아닐까?

이처럼 잘 나가던 한반도 정세가 갑자기 난관에 봉착하면서 세간에서는 북한이 과연 ‘경제-핵 병진노선’으로 돌아갈 것인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다가오는 2019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병진노선이 재등장할지에 초점이 모인다. 북한에서 신년사는 형식적 인사 수준이 아니라 한 해 국가 노선을 규정하는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병진노선 꺼내지 못할 이유 없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병진노선 복귀를 꺼내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없다. 현재 상태가 유지된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아무런 미련 없이 병진노선으로 복귀할 것이다. 

북한이 올해 4월 병진노선을 경제총집중노선으로 발전시킨 목적은 국제 사회와 손을 잡고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과거를 덮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 꽉 막힌 한반도 질서를 정상화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핵실험 중단, 미사일 발사 중단을 선언했고 실제로 핵실험장을 폭파시켰다. 

이런 북한의 선제조치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을 약속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크게 환영하며 대화로 모든 문제를 풀자, 대북제재를 완화하고 해제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종전선언과 제재해제는 제대로 되고 있나? 만약 그렇다면 북한이 굳이 병진노선으로 복귀할 이유는 없다. 한·미·중·러와 함께 대화와 협력으로 한반도 질서를 정상화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종전선언도, 제재해제도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선제조치에 대해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애초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이 병진노선으로 복귀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혹자는 북한이 병진노선으로 복귀하면 엄청난 제재와 압박이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그래봐야 지난해(2017년)와 달라질 것은 없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병진노선 복귀

만약 북한이 이번 신년사에서 병진노선 복귀를 선언하면 각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일단 미국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북한이 병진노선 복귀를 선언한다면 당연히 핵·미사일 활동을 재개한다는 선언이며 그렇다면 지난 2017년에서 한층 높은 수준의 군사행동들이 나올 것이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지난 칼럼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니 생략한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할 방법이 없으며 미국 내 비난 여론이 들끓으면서 정권 유지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병진노선 복귀를 막기 위해 북한에 온갖 립서비스를 하고 한미연합훈련을 로우키로 하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 때문에 북한이 미국에 기대를 갖고 병진노선 복귀를 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이 병진노선으로 복귀하면 한국도 심각한 혼란이 예상된다. 안 그래도 끝없이 추락하는 지지율로 전전긍긍하는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인 남북관계마저 후퇴하면 정권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식사만 하는 정상회담이라도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합의할 내용이 없으니 회담이 성사되기는 어렵다. 아마도 정부는 자신들이 트럼프 정부를 설득할 테니 비핵화 선제조치를 더 해달라고 북한에 요청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북한이 이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 

중국과 러시아는 어떨까? 중국, 러시아는 동북아 안정이 절실하다. 

중국은 전부터 동북3성 경제개발에 주목해왔고 2003년 동북진흥전략을 입안하였고 2016년에는 신동북진흥전략을 발표해 3년 동안 27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동북3성은 육·해상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과 북한·러시아 항구를 빌려 동해로 진출하는 차항출해(借港出海) 전략의 요충지다. 동북3성 경제는 북한과 밀접한 연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대북제재로 인해 경제규모나 경제성장률, 주민 소득, 수출입 비중이 모두 중국 평균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런 처지 때문에 중국은 동북아 정세 긴장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러시아 역시 오래전부터 극동개발에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취임하자마자 북한을 방문해 ‘아시아 중시전략’의 시작을 알렸다. 푸틴 정부는 집권3기(2012~2018년) 최대 국정 과제의 하나로 극동·시베리아 개발을 꼽고 17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였다. 또한 2015년부터 신동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을 대통령령으로 창설했다. 이 포럼은 러시아가 연방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단 3개의 포럼 가운데 하나다. 

이런 이유로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2016년 8월 28일 기사를 통해 “극동개발은 푸틴의 명운이 달린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특히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을 잇는 장거리 가스관과 송유관 건설, 사할린 유전 가스관 연결, 극동 최대 수력발전소인 부레야 발전소의 송전망 구축 등은 남·북·러 모두 관심을 모으는 사업들이다. 하지만 동북아 정세가 불안정하다보니 10년 이상 논의만 무성할 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중국, 러시아는 북한의 병진노선 복귀를 당연히 반대할 것이다. 문제는 중국, 러시아가 북한에게 자제를 요구한다고 해서 북한이 말을 듣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스스로 먼저 비핵화 조치를 했지만 미국은 뭘 했나. 우리가 병진노선으로 복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북한을 설득할 명분이 필요하다. 중국, 러시아는 북한이 병진노선을 다시 꺼내지 않도록 다음과 같은 조치를 할 것이다. 

우선 미국에게 종전선언 약속 이행,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할 것이다. 그래야 북한이 병진노선으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러시아는 음으로 양으로 미국에게 이런 요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요지부동이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의 진실

2단계로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에서 직접 대북제재 재논의를 공식화할 것이다. 사실 이건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을 이행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게 무슨 얘긴지 이해하려면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북핵 관련 가장 최근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97호(S/RES/2397)를 살펴보자. 이 결의안은 2017년 11월 29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그해 12월 22일에 나온 것이다. 흔히 대북제재 결의안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비확산/북한’이다. 이 결의안은 총 29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북한에 대한 각종 경제제재 내용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경제제재만 있는 건 아니다. 

27조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평화, 외교, 정치적 해법을 찾아야 하고, 대화를 통해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내용이다. 또 28조는 북한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검토하면서 북한의 준수에 비추어 필요한 조치를 강화, 수정, 보류, 해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결의안 28조에 따르면 북한이 선제적인 비핵화 조치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재논의해 수정, 보류, 해제 가운데 하나를 해야 한다. 따라서 중국, 러시아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대북제재 재논의를 공식화하여 북한의 병진노선 복귀를 막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북제재 재논의를 공식화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일단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재논의를 반대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재논의에 착수해도 대북제재 완화나 해제에 대해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 역시 무용지물이다. 재논의 공식화만 믿고 북한이 병진노선 복귀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는 최후의 3단계에서 실력으로 유엔 안보리 결의안 무효를 선언할 수 있다. 북한의 선제적 비핵화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를 유지하는 것은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기에 미국의 결의안 위반을 지적하면서 무효를 선언해버리는 것이다. 지난 10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거리핵전력협정(INF) 탈퇴를 선언했다. 이처럼 자국의 필요에 따라 협정을 탈퇴하거나 무효화를 선언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중국, 러시아는 대북제재를 담은 모든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모두 무효이며 더 이상 이에 구애받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고 즉각 북한과 경제협력에 뛰어들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북한이 병진노선에 복귀하지 않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병진노선은 여전히 영향력 발휘 중

물론 미국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도록 방관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대북제재 완화·해제에 문재인 정부가 동요하지 않도록 한미워킹그룹과 그 밖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철저히 통제할 것이다. 이것은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미국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 사회의 특성이 있으며, 문재인 정부 역시 미국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대북제재를 무력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인식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에게도 경고를 던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국제사회 이슈가 된 화웨이 사태다.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가 중국 최대 IT 기업인 화웨이의 멍완저우 부회장을 체포해버린 것이다. 표면적 이유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조치 위반이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의 대북제재를 지키지 않으면 보복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는 측면도 있다. 미국의 이런 경고가 효과를 발휘할지는 지켜보자. 다만 중국, 러시아의 최근 상황과 행보를 보면 미국의 구도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은 미국이 종전선언·제재해제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 병진노선으로 복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97호 28조에 따라 대북제재 재조정을 추진하고 실력으로 돌파한다면 굳이 병진노선으로 복귀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그리고 일본 정부의 입장은 어떨지 관심사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현상이 또 있다. 여전히 한반도와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북한의 병진노선이라는 점이다. 병진노선은 우리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계속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언론들도 벌써부터 북한의 내년 신년사에 한반도 운명이 달려있다며 주목하고 있다. 과연 내년 북한 신년사에 병진노선이 등장할까?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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