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

지난주에 이어 북한 신년사에 대한 분석을 계속한다.

 

5. <평화, 번영, 통일>

 

민족 전체가 신년사의 범위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 전반에서 우리 민족을 중심으로 우리 동포 모두를 포괄하는 입장을 보여주었다. 인사말에서도 “나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번영의 새 역사를 써나가기 위하여 우리와 마음을 같이한 남녘겨레들과 해외동포들에게 따뜻한 새해인사를 보냅니다”라고 하여 전체 민족에게 인사를 전했다. 

남북관계를 다룬 부분에서 구체적인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이야기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구체적인 대상이 드러난 건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였던 남측기업인”과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남녘동포” 뿐이었다. 한국 당국자를 대상으로 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는데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지난해 신년사만 해도 ‘남조선 당국’이라고 콕 짚어서 몇 번에 걸쳐 언급했다. 

북한 신년사의 이런 특징은 김정은 위원장의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당과 정권기관, 근로단체조직들은 무슨 일을 작전하고 전개하든 인민의 이익을 최우선, 절대시하고 인민의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인민이 바라고 덕을 볼 수 있는 일이라면 천사만사를 제쳐놓고 달라붙어 무조건 해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나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하고 인민생활에 첫째가는 관심을 돌리며 모든 사람들을 품에 안아 보살펴주는 사랑과 믿음의 정치가 인민들에게 뜨겁게 가닿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하였으며 또 “일꾼들은 어려운 일에 한 몸을 내대고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밤잠을 잊고 피타게 사색하여야 하며 인민의 높아가는 웃음소리에서 투쟁의 보람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를 두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모든 것을 조국과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것으로 민족 문제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우리 민족을 위해, 우리 동포를 위해 복무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당국자, 관료가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조국과 ‘인민’, 민족을 내세우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신년사에서 굳이 문재인 정부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반면 지난해 신년사에서 ‘남조선 당국’을 언급한 것은 그 전년도인 2017년에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민족의 뜻과 다르게 적대정책을 펼친 것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온 겨레의 공통된 염원과 지향과 의사를 충직히 받들어, 불신과 대결의 북남 관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함께 손잡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나가야 합니다”, “북남 인민들이 절실히 바라는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의제들을 진지하게 논의하였습니다”라고 하였는데 모든 것을 민족 전체의 바람을 실현하자는 자세로 회담에 임했음을 알 수 있다.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도 “평양시민들이 겨레, 북과 남의 인민들 위해서 더 훌륭한 성과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기를 바라는 그런 기대에 섞인 환호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여 겨레의 기대에 복무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남북이 만나 대화와 협상을 하는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김정은 위원장은 시종일관 온 민족의 염원을 해결하는 것을 제1번 목표로 강조하였다. 국내 정치인들도 이 점을 잘 봐야한다. 판문점과 평양에서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장면들이 나왔지만 국내 정치권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어떻게 활용할까에 혈안이 되지는 않았는가. 누구는 자신도 역사적인 자리에 있었다는 걸 이용해서 인기를 누리려 하고, 누구는 반대로 종북몰이에 활용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 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였다. 문재인 정부도 남북정상회담을 지지율 높이기에 활용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김수근 <위인맞이환영단> 단장은 KBS 인터뷰에서 “우리 정치인들에게 볼 수 없는 겸손하고 실력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자신이 김정은 위원장의 팬이라고 했다. 국내 정치인에게서 보지 못한 걸 김정은 위원장을 통해 봤다는 발언을 굉장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한국에서 정치인이라면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입으로는 국민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한다면서 노골적으로 자신과 자기 패거리를 위해 국민을 배신해왔기 때문이다. 국민을 팔아 자기 배를 채우는 게 정치인이라는 건 상식처럼 되었다. 김 단장은 이런 국내 정치인만 보다가 김정은 위원장을 보고서 신선한 충격을 받지 않았나 싶다. 

남북 정치인의 근본적 차이에는 사상이 있다. 이 차이로 인해 위정자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지도 달라진다. 중요한 대목이다. 

북한의 역대 신년사를 보면 매번 남녘과 해외 동포에 대한 인사말이 나온다. 온 민족을 신경 쓰고 품어주려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반면 국내 대통령은 어떤가? 올해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한국 국민에 대한 인사만 있으며 특별히 각계각층 대표와 5부 요인, 원로, 경제인은 언급했지만 북녘 동포나 해외 동포는 등장하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 신년사가 대체로 그러했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남, 북, 해외 동포 모두에게 인사를 보내는 이유가 뭘까? 김정은 위원장이 남녘과 해외 동포들도 한 민족으로 여기며 새해 정책에도 이를 염두에 두어 반영하기 때문이다. 당장 올해 신년사를 보면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였던 남측기업인들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남녘 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면서 남녘 동포를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하여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영토며, 북한 국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정작 그 헌법 조항은 북한이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단순히 정부 정책의 문제만이 아니다. 북한 여행을 가서 북한 주민들을 만나본 사람의 얘기나,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북한에서는 남녘 동포를 한 민족이며 통일의 대상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북한 동포를 적으로 배우고 대한다. 북한은 무조건 악이고 나쁘고 비하해야할 대상으로 배운다. 

우리 민족은 반세기 넘게 갈라져 외세의 간섭과 핵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 우리 민족이 언제 평화롭고 번영하는 통일국가를 건설해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민족의 운명을 누가, 어떻게 책임지려 하는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를 긍정 평가했다는 착시현상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지난해 남북관계에 대해 “아직은 첫걸음에 불과하지만 북과 남이 뜻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 불신과 대결의 최극단에 놓여있던 북남관계를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확고히 돌려세우고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경이적인 성과들이 짧은 기간에 이룩된데 대하여 나는 대단히 만족하게 생각합니다”라며 상당한 만족을 표했다. 

​그러자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노심초사 지켜보던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남북관계가 전변을 이룬 건 맞지만 사실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신년사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면 올해 남북관계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시작하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사람들은 기대가 클수록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모든 문제를 해석하기 마련이고 이로 인해서 착시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분명 북한은 지난해 남북관계를 매우 긍정적으로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굳이 비판하지도 않았다. 신년사를 잘 읽어보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아예 없다. 신년사는 오로지 남북관계가 우리 민족의 염원에 맞게 발전한 부분, 온 겨레가 힘을 모아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의 우수성을 떨쳤다는 내용만 평가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한국 정부를 지목해서 엄중하게 비판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실 지난해 남북관계를 돌아보면 북한의 주동적 조치와 한국 국민이 들었던 촛불의 힘으로 극적인 변화들을 이끌어냈음을 알 수 있다. 촛불이 없었으면 박근혜 정권 혹은 박근혜 정권의 연장선에 있는 정권이 지금도 남북대결에 열을 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박근혜 정권에 비해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의사가 있었고 노력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북관계를 전변시키기 위한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촛불 민심을 적극 대변하려는 의지도 부족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았음을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금도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을 가로막는 미국의 간섭과 압박을 해쳐나갈 의지가 박약하다. 오히려 미국의 대북정책에 공감하고 자신의 입장을 미국에 맞춰 미국을 대변하는 측면이 강하다. 쉽게 말해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권보다는 낫지만 제한성이 많다. 

​그렇지만 북한은 이를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이것이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를 대하는 태도다. 컵에 물이 20%쯤 차올랐다고 해보자. 누구는 ‘물이 별로 없네’ 하며 실망하지만 누구는 ‘물이 20%나 생겼네’ 하며 귀하게 여기고 키워가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제한성이 있어도 긍정성을 귀하게 여기며 이끌어가려고 하는 것 같다. 

북한의 다른 성명, 논평을 보면 분명 문재인 정부의 제한성에 대해 엄중히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미국에게 있기에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 문제를 직접 해결해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승인’에 연연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책임감마저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는 앞서 북한이 남, 북, 해외 온 민족을 책임지려는 자세와 연동된다고 할 수 있다. 

올해 안에 통일을 실현할 손쉬운 제안

북한은 신년사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강조했다. 

북한은 우선 한반도의 평화적 환경 조성에 대단히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나온 남북 합의들을 ‘사실상의 불가침선언’이라고 평가한 게 특히 눈에 띈다. 

​한반도에서 평화 문제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끝내야 한다는 온 겨레의 염원이 담긴 매우 중요한 문제다. 평화는 공동 번영과 통일로 가는 첫 출발점이며 기초 환경이다. 대외적으로도 평화가 실현되어야 우리 민족의 요구에 맞게 뭐든 할 수 있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북남사이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근원적으로 청산하고 조선반도를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지대로 만들려는 것은 우리의 확고부동한 의지”라며 강조했다. 또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라며 온 겨레의 염원인 한반도 평화를 기어이 실현하겠다는 입장과 의지를 신년사에 담았다. 

​나아가 “온 겨레는 조선반도평화의 주인은 우리 민족이라는 자각을 안고 일치단결하여 이 땅에서 평화를 파괴하고 군사적 긴장을 부추기는 일체의 행위들을 저지 파탄시키기 위한 투쟁을 힘차게 벌여나가야 할 것”이라며 평화 훼손만큼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다음으로 북한은 민족의 공동번영을 강조했다. 물론 북한은 신년사에서 ‘자력갱생’과 ‘자립경제’를 강조하며 북한 자체의 힘으로 자신들의 번영을 이룰 것임을 천명했다. 공동번영은 북한의 번영은 물론이고 남북이 함께 번영하자는 것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출로가 보이지 않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그나마 경제를 지탱하는 반도체 산업이나 첨단 정보통신 산업도 중국에게 이미 추월당했거나 추월을 목전에 둔 상황이다. 신 성장동력으로 꼽을만한 것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제 문제로 인해 집권 초반 압도적 지지율을 유지하던 문재인 정부도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대로 간다면 경제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붕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지만 한국 경제의 활로는 남북 협력밖에 없다. 선거 때만 되면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남북경제협력을 주된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한국 입장에서 북한이 각자도생이 아닌 공동번영을 강조한 것은 무척 다행이다. 

사실 북한은 민족의 공동번영을 위해 어려운 조건에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북한은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석유나 희토류 개발에 전면적으로 뛰어들 수도 있었지만 미뤘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평양이 기름더미 위에 떠있다”며 북한 석유 개발에 뛰어들려고 했던 일에서도 알 수 있지만 북한은 막대한 가치를 지닌 지하자원들을 통일을 위해 아껴두고 남녘 동포들과 나누려고 하였다. 

​북한의 공동번영 노선은 우리에게 중대한 의의가 있다. 공동번영 노선이 없다면 우리는 희망도 없고 영영 출로 없는 섬나라 신세가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빨리 잡아야 한다. 

​끝으로 북한은 통일을 위한 중요한 제안을 하였다. “통일에 대한 온 민족의 관심과 열망이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는 오늘의 좋은 분위기를 놓치지 말고 전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하며 그 실현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에 머물지 말고 여세를 몰아 곧바로 통일을 이루자는 것인데 통일을 바라는 이라면 누구나 적극 지지할 내용이다.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은 완전히 다른 노선이다. 평화공존 노선은 한반도에 평화와 공동번영까지만 이루고 분단된 상태를 계속 유지해 2개의 별개 국가로 지내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과거 한국과 중국이 적대적 관계에 있다가 수교를 맺고 전면적인 경제 교류를 하는 관계가 된 것과 같은 길을 가자는 것이다. 남북이 별개의 국가가 되어 영구 분단으로 가자는 것은 우리 민족의 의지와 완전히 상반된 노선이다. 또한 분단이 고착된 상태에서는 평화와 번영도 모래성과 같아서 언제든 정세변화에 따라 무너질 수 있다. 

​문제는 국내 정치계에 평화공존 주장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당장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3월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에서는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평화공존론이다. 

​물론 이런 발언은 앞뒤 맥락이 중요한데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을 반대한 건 분명 아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해야 하지만 당장은 평화부터 실현하자”는 정도로 발언해도 될 것을 굳이 저렇게 표현한 것은 은연중에 자신의 속내를 비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대통령으로서 신중하지 못한 발언으로 규탄받을 만한 일이다. 

​이런 문제가 있기에 우리는 평화, 번영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반드시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에 북한이 통일방안을 모색하자고 한 것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것이다. 

​통일방안이라고 하면 이미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에 그 기초가 나와 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제 이것을 토대로 통일방안을 더욱 구체화하면 된다. 

​여기서 올해 안에 통일을 실현할 손쉬운 실질적 조치 두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유엔 의석을 단일화하자. 국명을 영문은 KOREA로, 한글은 남북이 협의하여 결정하면 된다. 표결은 남북이 합의해서 결정하고 합의가 안 되면 기권하면 된다. 유엔 대사를 누가 하느냐도 간단하다. 매년 순번제로 교대하면 되며 유엔 총회 연설도 번갈아가면서 하면 된다. 유엔 대사를 누가 하든 표결은 합의에 따라 하면 되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 

​둘째로 주요 국제경기에 단일팀으로 참여하자. 지난해 이미 몇 차례 경험이 있으므로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작은 경기들까지 단일팀으로 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영국은 월드컵 국가대표 축구팀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4개로 나눠서 나간다. 그렇다고 영국이 4개 나라로 분단됐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다른 국제경기에는 하나의 영국 국가대표팀이 출전한다. 우리도 주요 국제경기부터 단일팀을 구성하고 이를 위해 상설기구로 민족체육위원회를 구성하자. 

​이 두 가지 조치는 현재의 남북 정치, 경제, 사회에 아무런 변화 없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꼭 올해 해서 상징적 통일이라도 이루자. 나머지 통일은 차차 하더라도 일단 대외적으로 한 나라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6. <평화, 안정, 번영>

​북한은 신년사 후반부에서 대외정책을 밝혔다. 여기서 먼저 짚을 것은 남북관계 정책과 대외정책을 구분했다는 점이다. 즉, 북한 입장에서 남북관계 정책은 대외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내정책일까? 앞서 얘기한 것처럼 북한은 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정책을 준비한다. 즉, 북한은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구상하는데 그 안에 북한 지역 정책, 조국통일 정책이 있는 것이다. 

​신년사에는 보통 두 개의 구호가 등장한다. 올해는 “자력갱생의 기치높이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와 “역사적인 북남선언들을 철저히 이행하여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전성기를 열어나가자!”는 구호를 제시했다. 전자는 북한 지역에서 할 일을 구호로 담은 것이며 후자는 조국통일 영역, 전 민족적 영역에서 할 일을 구호로 담은 것이다. 이 두 영역에서만 구호를 제시한다는 것은 조국통일 영역도 나의 일, 내 집안일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처럼 지역정책, 통일정책을 제시한 뒤에 대외정책을 제시했다. 대외정책의 기본 노선은 평화, 안정, 번영이다. 

세계자주역량 구축에 방점

신년사는 대외정책의 첫 번째 내용으로 지난해 있었던 사회주의권의 단결과 협조에 대한 평가를 담았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흔히 많은 이들이 이번 신년사의 대외정책으로 미국에 대한 ‘새로운 길’을 가장 중요하게 보았다. 하지만 북한은 신년사를 매우 정밀한 연구 끝에 문구를 확정하고 문장을 다듬는다. 신년사에 등장하는 표현의 순서는 일반적으로 중요도를 이야기한다. 분량 상으로는 대미정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사회주의권의 단결과 협조를 맨 앞자리에 넣은 것은 그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신년사의 해당 대목을 살펴보자. 

​“세 차례에 걸치는 우리의 중화인민공화국방문과 쿠바공화국대표단의 우리나라 방문은 사회주의 나라들 사이의 전략적인 의사소통과 전통적인 친선협조관계를 강화하는데서 특기할 사변으로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북한은 신년사 대외정책 부분에서 미국을 제외하고 구체적인 나라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왔다. 대외정책에서 특정 국가를 거론하는 건 그만큼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과 쿠바를 콕 집어서 거론했다. 그만큼 두 나라가 북한과 매우 긴밀한 전략적 관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흔히 북한은 중국, 러시아, 미국 등 대국들과의 관계를 1차로 생각한다고 여기는데 그게 아님이 드러났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의 단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는 북한 대외정책의 분명하고 중요한 특징이다. 

​얼핏 사회주의 국가들끼리 협력하는 게 당연한 현상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과거 역사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구 소련과 중국은 노선갈등을 겪다가 국경분쟁까지 벌였으며, 중국과 베트남도 국경에서 영토분쟁을 진행했다. 구 소련과 중국은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도 시도해 북한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즉, 사회주의 국가들끼리도 분열, 대립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작년부터 주도적으로 나서서 중국, 쿠바와 갈등과 간섭이 없는 단결과 친선의 기류를 만들었다. 이는 과거와 판이하게 다른, 하나의 전변이다. 북한은 과거 김일성 주석 때부터 국제 사회주의의 단결을 주장해왔는데 김정은 위원장 대에 이르러 이것이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의 단결과 협력을 통해 국제운동의 핵심 역량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며 이런 견지에서 북한, 중국, 쿠바의 단결과 협력이 강화되는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다음으로 북한은 “세계 여러 나라들 사이에 당, 국가, 정부 급의 내왕과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어 상호이해가 깊어지고 국제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추동하려는 입장과 의지가 확인되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대외정책은 자신과 우호·친선관계를 맺으려는 나라와는 교류·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러시아와 관계가 돈독해진 것이나 교황의 방북 의사에 긍정 반응을 보인 것 등이 예다.

새로운 길은 새로운 전쟁

끝으로 북한은 미국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순서 상 미국에 대한 입장을 신년사의 가장 뒤, 대외정책에서도 가장 뒤에 배치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자신의 국가정책, 대외정책에서 미국을 가장 후순위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과거와도 달라진 점이다. 북한은 그동안 사회주의권의 단결, 제3세계 등 여러 나라와의 친선을 추진하는데서 주된 방해세력이었던 미국을 제거하는 차원에서 반미 문제를 중요하게 제기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 문제가 후순위로 밀려났다. 

​일단 미국의 군사적 압박과 전쟁위협을 막았다는 자신감이 반영되었다. 북한은 2018년 신년사에서 “우리 국가의 핵 무력은 미국의 그 어떤 핵 위협도 분쇄하고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됩니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합니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라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렇게 미국의 핵위협을 결정적으로 분쇄했기에 미국 문제는 북한 대외정책에서 중요도가 떨어졌다. 

​북한은 여전히 반제자주노선을 견지하고 있을 텐데 세계 자주역량을 키우는 문제를 중심에 두면서 제국주의를 밀어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이번 신년사에서 1순위로 중국, 쿠바와의 관계 강화를 평가한 것, 다음으로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국제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추동하려는 입장과 의지”를 확인한 것을 평가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북한은 북한, 중국, 러시아, 쿠바, 이란, 시리아 등을 기본 역량으로 삼아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듯 제국주의를 밀어내겠다는 구상인 듯하다. 즉, 사회주의, 자주, 친선의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대미정책으로 당근과 채찍을 제시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새로운 길’이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길’을 두고 경제-핵 병진노선 복귀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과거로 복귀하는 것이기에 새로운 길이 아니다. 혹자는 중국, 러시아와 관계 강화를 통해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전략을 제시하는데 이 역시 새로운 길이 아니다.

​북한은 한 번도 중국, 러시아 대신 미국과 손을 잡고 평화, 번영을 추구한 적이 없다. 중국 등 사회주의권, 러시아 등 자주친선국과의 관계를 통해 평화, 번영을 추구한 것은 북한의 전통적인 대외정책이었다. 미국을 파트너로 삼거나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한 적은 없다. 지난해 북미정상회담 직전 북중정상회담을 진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길’이란 대체 뭘까? 북한의 구상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전쟁이 아닐까 싶다. 신년사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하여 전쟁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쟁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북한은 이미 1950년 미국과 전쟁을 치렀다. 따라서 ‘새로운 길’이라고 한다면 당시 전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전쟁을 말한다. 한국전쟁 당시는 미국이 한반도에 들어와 북한이 맞서 싸우는 형국이었다면 새로운 전쟁은 북한이 워싱턴에 핵미사일을 겨눈 채 하는 전쟁이 될 것이다. 

1단계는 김정은 위원장의 집무실 책상 위에 핵미사일 단추를 올려놓은 채 북한이 실력행사를 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1969년 4월 15일 미군 EC-121 워닝스타 조기경보기를 북한 인민군이 격추한 사건을 떠올릴 수 있다. 혹은 2014년 4월 10일 러시아 전투기가 흑해에서 미국 구축함 도널드 쿡을 상대로 위협비행을 하며 전자전을 펼쳐 쫓아낸 사건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북한이 실력행사를 해도 미국은 워싱턴을 겨냥한 핵미사일 때문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2단계는 미국이 북한의 실력행사에 반격하는 상황인데 아마도 북한은 가차 없이 핵미사일을 미국 전역의 주요 지역에 날려 보낼 것이다. 그 결과가 어찌 되리라는 것은 굳이 세세히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7. <각성, 분발>

이번 북한의 신년사를 자세히 분석하다보면 절로 많은 각성을 하고 분발의 의지가 생기게 된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우리 민족끼리 서로 마음과 힘을 합쳐나간다면 조선반도를 가장 평화롭고 길이 번영하는 민족의 참다운 보금자리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이 땅이 세계에서 가장 평화롭고 번영하는 보금자리가 되어 우리의 후손들이 대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누구라도 공감하고 감동하며 심장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행복의 길을 가로막는 근원에 미국이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미국을 극복해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자각과 각성, 분발의 의지를 굳게 세워야 한다. 미국을 맹신하는 자유한국당과 수구분단적폐세력들을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비자립적 친미노선이 가진 한계 때문에 평화와 번영, 통일이 가로막히고 제대로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참다운 자주정치를 펼칠, 국민주권을 실현할 정부를 수립해야할 필요성이 절박하게 나선다. 

​우리 문제는 그 누구도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진보세력이 책임감을 가지고 주인답게 해결해야 한다. 이것만 해결하면 된다. 모두가 참된 자주정부, 국민주권정부를 수립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2019년을 승리로 장식하자.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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