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13.

북한은 올해 1월 조선노동당 제8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김일성 주석 탄생 110돌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탄생 80돌을 “승리와 영광의 대축전”으로 “성대히 경축”하겠다고 하였다. 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계기에 대해 우리도 학술적으로 자세히 연구하는 게 통일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기획연재를 10회에 걸쳐 준비하였다. 

 

 


 

 

 

 

 

8.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애민’ 사상

 

‘인민을 위해 복무함’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한 몸을 깡그리 다 바쳐 일하려는 것이 나의 흔들림 없는 각오이며 의지이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2006년 4월 16일 정론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처럼 말했다고 밝혔다. (문성규, 「김정일, 90살 되어도 김일성 위해 일해」, 한국일보, 2006.4.16.)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0년 1월 1일 조선노동당 및 정무원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당사업과 사회주의건설에서 전환을 일으켜 1990년대를 빛내이자」에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담화에서 “당일꾼들은 언제나 군중 속에 들어가 군중에게서 배우며 군중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것을 습성화하여야 하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것을 가장 큰 영예와 보람으로 여겨야 한다”라면서 당시 군대에서 사용하고 있던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를 당일꾼들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란 구호로 삼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때부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란 구호는 북한의 당일꾼들에게 가장 중요한 규범을 뜻하는 구호가 되었다. (편집국, 「이민위천의 원리적 기초」, 현장언론 민플러스, 2021.4.18.) 

여러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늘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행군 현지지도’, ‘쪽잠’, ‘줴기밥(주먹밥)’과 관련한 일화들이다.

채널A는 2014년 12월 3일 방송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삼복철 더위에도,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을 위한 현지지도를 했으며 거리는 167만 4,610여 리, 65만 7,000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이중 열차를 이용한 현지지도가 33만 4,000킬로미터에 이르며 1,500번 넘게 기차를 탔다”라고 하였다. 

노동신문은 2004년 11월 11일 정론 「선군궤도를 달리는 인민행 열차」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쪽잠과 관련한 일화를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2002년 9월 초의 일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밤새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7시에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일어나 사업에 열중했다고 한다. 이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꾼들에게 ‘인민’을 위해 더 많이 일하고 싶은데 하루가 24시간밖에 안 되는 것이 한스럽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새벽 1시를 초저녁으로 여기고, 푹신한 침대보다 차 안에서의 ‘쪽잠’, 푸짐한 식탁보다 ‘줴기밥’(주먹밥)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양희, 「“혁명가들에게 이상적인 도중 식사, 줴기밥”」, 통일뉴스, 2013.4.18.에서 재인용)

임순희 전 통일연구원 연구원 역시 자신의 책에서 북한 소설에 묘사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줴기밥’에 대한 일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할 때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간부들이 잘 차린 점심상을 마다하고 개울둑  풀밭에서 협동농장 일꾼들과 ‘줴기밥’을 함께 먹”었다. (임순희, 『북한문학의 김정일 ‘형상화’ 연구』, 통일연구원, 2001.) 굳이 협동농장에서 벗어나 식사를 한 이유는 농장의 농민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조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는 ‘인덕정치’의 구현방도이자 목표로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구호가 되었다. 

NK조선은 2013년 10월 30일자 보도 「통치행태 – 인덕정치(仁德政治)」에서 ‘인덕정치’라는 용어가 1993년 1월 28일 북한의 노동신문 논설 「인덕정치가 실시되는 사회주의 만세」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논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지니고 우리 인민을 위한 가장 훌륭한 인덕정치를 베풀고 있다 주장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방식으로 ‘인덕정치’를 처음으로 제시”했으며, “‘인덕정치’를 실시한다는 것은 ‘인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여기고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모든 정치를 실시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도서 『김정일』 저자 이찬행은 자신의 책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덕정치’는 크게 두 측면으로 펼쳐졌다”라고 소개했다. 하나는 “물질문화생활에서 누리는 사회주의의 제도와 혜택”이다. 이찬행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교복부터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국가에서 보장받는 ‘11년제 의무 무료교육’과 ‘무상치료제’가 인덕정치의 결실”이라고 하였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인덕정치’의 또 다른 측면은 “노인들에게 환갑상 등 각종 상을 주고 격려하는 것과 산간 오지에서 발생한 환자의 특별수송을 지원해주는 것” 등이라고 설명했다. (이찬행, 『김정일』, 백산서당, 2001.) 

인덕정치와 관련된 몇 가지 일화를 보자.

“북한에서 1995년 8월 100년 만의 홍수라 일컬을 정도의 큰 수해가 발생했다. 당시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수해 피해를 본 신의주 지역에 헬리콥터와 함선을 비롯한 군용수단과 인민군대를 동원해 수재민을 구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8월 14~15일 이틀에 걸쳐 50여 대의 차량에 지원물자를 싣고 현지에 직접 찾아가 수재민들을 위로했다.” (이찬행, 위의 책)

세쌍둥이 선물과 관련한 일화도 있다.

김일성 주석은 “세쌍둥이가 태어나면 나라가 흥할 징조”라면서 세쌍둥이에게 무슨 선물을 줄지 고심했다고 한다. 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함께 이 문제를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자아이에게는 은장도를, 여자아이에게는 금반지를 선물로 주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은장도와 금반지에 생일을 새겨 넣되, 어려서 헤어졌다가 나중에 다시 만나도 자기 형제를 확인할 수 있도록 3개를 모두 합쳐야 전체 출생연월일을 알 수 있도록 새겨 넣는 것을 제안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쌍둥이들의 건강은 평양의학대학병원을 중심으로 각 도별 소아병원과 유기적으로 연계를 맺으며 중학교까지 건강을 책임지도록 했다. (정준영, 「북한에서 특급대우받는 세쌍둥이」, 연합뉴스, 2004.7.12.)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덕정치’가 비단 북한의 국민만이 아니라 해외동포를 위해서도 펼쳐졌다고 소개했다. 

2011년 일본 동부 해안가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지진 참사를 겪은 재일동포에게 위문금 50만 달러(약 5억 6,000여만 원)를 보냈다. (한경닷컴 경제팀, 「“김정일 지진참사 재일동포에 위로금 50만 달러 보내”」, 한국경제, 2011.3.24.)

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재일동포 자녀들에게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으로 1억 6,520만 엔(약 17억 6,000만 원)을 보냈다. 그때까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재일동포들에게 보낸 교육원조비는 157차에 걸쳐 467억 5,945만 390엔에 달한다고 한다. (이계환, 「김정일 위원장, 재일동포자녀 위해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보내」, 통일뉴스, 2011.4.11.)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덕정치’로 국정을 운영했음을 엿볼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0대 인민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정운영에서 국민을 위해 다양하고 세심한 노력을 계속했던 바탕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유의 ‘인민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김창희 전북대 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민관’은 인간중심의 철학관으로 ‘인민’의 이익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고 풀어 간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창희, 「북한의 통치이념 ‘김일성-김정일주의’ 분석」, 『한국정치연구』 22권,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2013.)

2000년대 중반 평양을 방문했던 인사가 찍어온 사진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민관’이 구체적으로 담긴 북한의 선전물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작은따옴표로 강조는 필자)

 

1. 가장 열렬히 숭배하는 <하느님>은 ‘인민’
2. 가장 높이 존경하는 선생은 ‘인민’
3. 제일 힘있는 존재는 ‘인민’
4. 제일 재능있는 창조자는 ‘인민’
5. 제일 강한 무기는 ‘인민’의 일심단결
6. 가장 큰 염원은 자주성이 실현된 ‘인민’의 낙원건설
7. 가장 큰 기쁨은 ‘인민’의 행복
8. 가장 큰 괴로움은 ‘인민’의 불행
9. 가장 큰 분노는 ‘인민’의 존엄과 이익에 대한 침해
10. 제일 사랑하는 좌우명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정인서, 「김정일 10계명 ‘가장 열렬히 숭배하는 하느님은 인민’」, 시민의 소리, 2011.12.26.)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민관’을 볼 수 있는 발언도 있다. 

“동무들이 어떤 일이 있어도 밤에는 꼭 잠을 자야 한다고 하는데, 나도 밤이 깊으면 못 견디게 잠이 그립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편히 잠을 자면 그만큼 ‘인민’들이 고생합니다. 그래서 나는 쪽잠이 들었다가도 인차(곧) 깨어나곤 합니다. 궂은 날 험한 길을 피하고 좋은 날 좋은 길만 다녀서야 그것이 무슨 강행군이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이겠습니까? 날씨가 좋건 나쁘건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은 가야 합니다. ‘인민’의 행복이 곧 나의 기쁨이고 낙입니다.”(편집국, 「코로나애국주의와 김정일애국주의」, 현장언론 민플러스, 2020.6.2.)

관련 일화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6년 초여름 동해안의 ‘인민군대’를 현지지도하면서 그곳 지휘관들과 함께 식사할 때였다. 당시에 북한의 경제는 어려웠고 국민도 힘겨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차에 싣고 온 식사는 죽이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식탁에 오른 죽을 본 인민군 지휘관들은 “최고사령관 동지, 나라가 아무리 어려워도…” 하고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눈물을 삼켰다. 그들을 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금 우리 ‘인민’은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나라의 식량 사정이 긴장하여 ‘인민’들이 죽을 먹고 있다. ‘인민’들이 죽을 먹을 때는 나도 죽을 먹어야 한다. ‘인민’들이 배를 곯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라면서 인민군 지휘관들과 함께 반 그릇의 죽을 먹었다. (편집국, 위의 기사) 

일꾼들이 국민에게 불편을 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적했던 일화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8년 12월 24일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 할 때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장에 새로 설치된 초고압 전기로를 돌아본 뒤 노동자 식당을 찾았다. 흡족한 표정으로 식당에 들어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한동안 입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그 이유는 식당의 난방 온도가 너무 낮은 것 때문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식당이 추운 데서는 아무리 영양가가 높은 식사를 하여도 소용이 없다”라면서 “식당 식사칸의 온도를 양력 설 전까지 정상 상태로 올려놓으라”라고 지시했다.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동자들이 추운 데서 식사를 하게 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며 “기업소 책임일꾼들이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사죄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 이후 식당 난방을 올리기 위한 사업이 진행됐고, 책임일꾼들이 용해공들 앞에서 사죄했다. (「천리마제강 찾아간 김정일, 식당 돌아보다 격노한 까닭은…」, 중앙일보, 2009.3.18.)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국민의 생활과 관련된 것이라면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았음을 이 일화로 엿볼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원로언론인인 문명자 기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늘 간부들에게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라고 물었다고 하였다. 이 말은 모든 일의 기준을 국민으로 놓고 국민이 좋아하면 좋은 것이고, 국민이 싫다면 싫은 것으로 국민의 요구를 절대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명자, 「내가 본 김정일 총비서」, 서울신문, 2000.5.19.) 

 

****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민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고 지구 17바퀴에 맞먹는 현지지도의 길을 걸었다고 말한다. 그런 노력을 통해 북한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인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과학과 국방 분야에서 이후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가장 큰 좌우명인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대에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구호로 발전하여 모든 분야에서 간부들이 국민에 대한 복무로 일관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김효은, 「북한의 사상과 인민대중제일주의 연구」, 『통일정책연구』 제30권, 통일정책연구원, 2021.)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애민’ 사상이 녹아 있는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는 오늘날에도 이어져 북한의 모든 분야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 자주시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