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3.

북한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교재는 북한 헌법이다. 
헌법을 분석하다보면 북한 사회의 기본 이념과 국가 정체성,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 국가 정책과 노선을 잘 알 수 있다. 
이에 nk투데이 편집부는 북한 헌법을 하나하나 파헤쳐보는 연재를 기획하였다. 
분석할 북한 헌법은 현재 한국에서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최신판인 2019년 8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에서 수정보충한 헌법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표기법은 한국의 맞춤법을 따르되 불가피한 경우 북한 표기를 그대로 두었다. 
북한 헌법은 통일부, 법무부, 법제처가 공동 운영하는 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https://unilaw.go.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제18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은 근로인민의 의사와 이익의 반영이며 국가 관리의 기본 무기이다. 법에 대한 존중과 엄격한 준수 집행은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에게 있어서 의무적이다. 국가는 사회주의 법률 제도를 완비하고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강화한다.



법에 관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시각


법이란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국가가 강제력을 발휘하는 사회 규범이다. 

인류가 법을 만든 이유는 정의를 실현하여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규칙, 규범을 고안했으며 이를 예의와 도덕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 가운데 최소한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을 모아 법을 만들고 국가가 힘으로 법을 지키게 만들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레닌주의 시각에서 볼 때 법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압하는 수단이다. 

계급의 등장과 함께 법이 등장하였으며,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공권력을 동원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조선의 법인 범금 8조에는 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배상하고, 물건을 훔치면 노비가 되거나 거액의 벌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이 있다. 

부자에게 유리하고 서민에게 불리한 내용이다. 

이처럼 계급사회 법은 대체로 지배계급의 재산과 권력을 지키는 장치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대가 변하면서 피착취계급의 힘이 점점 커지고 법도 이에 맞게 변화하였다. 

즉, 기본적으로 법은 지배계급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지배계급과 피착취계급의 대립 속에서 힘의 크기에 따라 타협지점을 찾게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법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법이 자본가의 권리만 무제한 보장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도 일정하게 보장하며, 노동자의 힘이 큰 나라일수록 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도 더 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무계급사회, 즉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국가도 사라지고 법도 사라진다고 보았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1917년 쓴 자신의 저서 『국가와 혁명』(문성원·안규남 옮김, 돌베개, 1992)에서 “국가란 투쟁과 혁명에서 상대방을 힘으로 제압하는 데 쓰이는 이행기적 기관일 뿐이므로, ‘자유 인민 국가’ 따위를 운운하는 것은 완전히 어불성설이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아직 국가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도, 국가는 자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서 필요할 뿐이고, 자유를 말할 수 있게 되자마자 그런 국가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레닌, 84쪽)라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말을 인용하였다. 

또한 레닌은 “자본주의를 타도했다고 해서 민중이 어떤 규범도 없이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을 단박에 배우게 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레닌, 117쪽)라면서 “사회 구성원 모두, 또는 적어도 대다수가 국가를 스스로 관리하는 법을 배워 그들이 직접 운영”(레닌, 125쪽)할 때 국가도, 법도 사라질 것이라고 하였다. 

즉, 사회주의 사회가 발전하면서 노동자 민중이 사회를 관리하는 방법을 깨우치면 법이 필요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이 탄생한 후 논란을 가져왔다. 

레닌의 주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무기로 쓰인 법이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면 그 중간 단계인 사회주의 사회가 발전할수록 법은 점차 그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회주의 국가를 운영해보니 법을 축소할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법에 관한 북한의 시각


그렇다면 북한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김일성 주석은 “사회주의 법은 근로인민대중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인민들 자신이 만든 국가 관리의 기본 무기”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공화국 법은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고 사회주의 제도를 공고 발전시키며 인민의 권리와 이익을 옹호 보장하는 위력한 무기”라고 하였다. 

이런 내용들은 헌법 18조의 첫 문장에 “법은 근로인민의 의사와 이익의 반영이며 국가 관리의 기본 무기”라는 표현에 반영되었다. 

즉, 법을 자본주의 사회의 유산으로 보지 않고 국민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만든 무기이며 따라서 갈수록 강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법치국가란 ‘법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는 국가’다. 

그러나 북한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법치국가, 법치주의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에서 법은 국민의 의사와 요구를 반영하는 초계급적인 것이며 따라서 법치를 하면 모든 국민의 의사와 요구가 원만히 실현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자본가 계급, 특히 독점자본가를 위한 법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법치국가는 독점자본가를 위한 법치국가일 뿐이라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사회주의 법치국가의 개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한 시정연설에 잘 나온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우리나라를 법이 인민을 지키고 인민이 법을 지키는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법치국가로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살펴볼 수 있다. (아래 관련 내용은 모두 황금철 교수가 2019년 10월 24일 노동신문에 기고한 논설 「법이 인민을 지키고 인민이 법을 지키는 진정한 인민의 나라」를 참조하였다)

첫째는 ‘법이 인민을 지킨다’는 개념이다. 

북한은 지배계급을 위한 법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법이기 때문에 사법기관이 법을 집행하는 것이 곧 국민을 위한 행위가 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사회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적’들의 책동, 일꾼들에 남아있는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 행위와 강한 ‘법적 투쟁’을 벌여 국민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둘째는 ‘인민이 법을 지킨다’는 개념이다. 

북한은 자본가를 위한 법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로대중의 자각적인 법 준수 기풍은 확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회주의 사회에서 법은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므로 폭력과 강제로 유지되는 법 준수 의무가 아니라 영예와 자각으로 법을 준수하는 기풍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북한은 준법의식을 높이기 위해 준법교양은 물론 도덕교양을 잘 해야 한다면서 도덕문제만 해결되면 법 기강 문제도 해결되기에 도덕교양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셋째는 ‘당의 영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은 ‘법치국가’라고 하지 않고 ‘사회주의 법치국가’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당의 영도’ 아래 법치국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회주의 국가는 노동계급의 정당이 사회 전체를 영도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법기관이 당 위에 올라선 소련이나 동구권이 결국 사회주의를 포기한 점에 유의하며 사법기관이 반드시 당의 영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 법무생활


한편 헌법 18조 말미에 나오는 ‘사회주의 법무생활’은 1977년 12월 15일 최고인민회의 6기 1차 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이 한 연설 「인민정권을 더욱 강화하자」에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이후 1982년 12월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회주의헌법 공포 10주년 기념 연설 「사회주의법무생활을 강화할데 대하여」에서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연설에 따르면 사회주의 법무생활이란 “모든 사회성원들이 사회주의 국가가 제정한 법규범과 규정의 요구대로 일하며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주의 법무생활의 특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각적인 규율생활”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법규범과 규정에 기초하여 사람들을 통일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공동생활을 실현해가도록 하는 국가적인 조직생활”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위한 세 가지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는 사회주의적 법제 사업의 강화인데 이는 입법을 체계적, 통일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자발적 준법의식 강화인데 이는 대중에게 법을 잘 해설해 준법 기풍을 세우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소 노동자를 대상으로 매주 법무해설원이 법무해설 강좌를 하는 식이다. 

셋째는 법무생활 지도체계를 수립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기구로 ‘사회주의 법무생활 지도위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