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1.

(이어서)

 


6. 민심과 미국의 대결


윤석열 정권을 안정화해서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대만 전쟁에 동원하려는 미국의 구상은 뜻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단 국힘당 지도부를 친윤 일색으로 꾸렸지만 하나로 단결하지 못하고 갈등을 계속하고 있다. 김기현 신임 대표는 “여야 협치 속에서 국민 민생을 살리기 위한 과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라고 하였지만 여기에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유승민 전 의원이 8일 자기 페이스북에 “지난 8개월 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말살해 마침내 국민의힘을 대통령 1인이 독점하는 ‘윤석열 사당’으로 만들었다”, “오늘부터 공천 협박이 사실상 시작되고 민주정당의 건전한 경쟁과 비판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 것”이라고 혹평한 것에 주목했다. 

당내 갈등은 한일관계에 관해서도 나타났다. 정진석 전 국힘당 비대위원장이 20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라고 하자 같은 당 김웅 의원이 개인 SNS에 “그럼 나치의 인종학살에 대해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야기하는 것은 유대인 콤플렉스냐”라고 맞받아쳤다. 내년 총선까지 가는 과정에 당내 갈등은 점점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유 전 의원은 “오늘 이 순간부터 국민의힘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권력의 오만을 용납하지 않는 민심”이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전당대회 이후 국힘당 지지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3월 첫 주 44.3%였던 지지도가 전당대회 이후 조사한 3월 둘째 주 41.5%, 셋째 주 37.0%로 계속 곤두박질쳤다. 특히 영남지역의 지지도가 크게 떨어진 점이 주목된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도 39%에서 38%, 34%로 계속 떨어졌다. 미디어토마토 조사 결과에서는 김기현 체제에 대한 기대가 ‘있다’(36.0%)보다 ‘없다’(60.0%)가 훨씬 높았다. 

국힘당 지지도와 더불어 윤 대통령 지지도도 계속 떨어졌다. 3월 1~3주 조사 결과를 보면 리얼미터는 42.9% → 38.9% → 36.8%, 한국갤럽은 36% → 34% → 33%로 2월 한 달 서서히 오르던 추세가 완전히 꺾였다. 

이런 와중에 정권과 여당 내에 잡음과 혼란마저 끊이지 않는다. 

김재원 국힘당 최고위원이 12일 전광훈 목사 예배에 참석해 대선 시기 윤석열 후보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고 한 것을 두고 “표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판다는 게 정치인들 아니냐”라고 말했다가 크게 논란이 됐다. 대통령실의 압박에 결국 김 최고위원이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친윤 일색 국힘당 지도부 안에서 윤 대통령을 우습게 여긴 것으로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었다. 

주 69시간 근로제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이상한 모습이 나왔다. 

16일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대통령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적절한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으로 여기고 보완을 지시했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유감을 표하면서 책임 떠넘기기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20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브리핑을 자처해 주 60시간 발언은 “개인적 생각에서 말한 것이지 가이드라인을 주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다”라며 “캡을 씌우는 게 적절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이 굳이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다”라고 말을 바꿨다. 

대통령 지시사항은 국무총리훈령 제696호 ‘대통령 지시사항 관리지침’에 따라 해당 부서에 정확히 전달하고 해당 부서는 이를 집행한 후 보고하게 되어 있다. 대통령실 실무자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라는 인물이 ‘대통령 지시’를 ‘개인 생각’으로 치부하며 뒤집는 하극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실과 국힘당 내에서 대통령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애초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총력 체제를 갖추려는 미국의 구상과 반대되는 현상이다. 

‘이재명 죽이기’도 먹히지 않고 있다. 

다수의 국민은 이 대표를 지지하느냐 여부를 떠나 검찰의 ‘이재명 죽이기’를 정치 탄압으로 보고 ‘이재명 지키기’에 나섰다. 최근 이 대표가 장외 투쟁에 나설 때마다 집회 참가자가 기존의 2배가량 늘어나는 현상도 이를 반영한다. 또 민주당 내에서 이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세력을 ‘수박’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규탄하기도 한다. 

민주당 내에서 이 대표를 축출하려던 세력은 이런 대중의 기세에 눌려 몸을 사리고 있다. 2~5일 베트남으로 워크숍을 간 더좋은미래는 흔히 ‘수박’ 세력으로 꼽히는 민주당 내 최대 의원 모임이다. 이들은 굳이 베트남까지 가서 민주당 진로를 논의했다고 한다. 민주당 내에 알려지면 곤란한 모종의 계획을 세우려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 4일에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하루 연장한 것으로 보아 상당히 치열한 논의를 한 모양이다. 이들은 8일 입장문을 발표했는데 당초 예상과 달리 이 대표 퇴진을 요구하지 않고 당의 단결을 강조해 오히려 이 대표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처럼 윤 대통령의 경쟁자인 이 대표를 주저앉히려는 시도도 통하지 않고 있다. 

한일관계를 ‘개선’해 한·미·일 삼각동맹을 완성하려는 미국의 구상은 국민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도 있다. 

최근 세 차례 열린 ‘한일정상회담 규탄! 윤석열 정부 망국 외교 심판! 강제동원 해법 폐기! 일본의 사죄 배상 촉구! 범국민대회’ 참가자를 보면 기존의 진보적인 정당·단체 회원뿐 아니라 민주당 당원·지지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이재명 지키기’와 반일·반윤 투쟁이 하나로 이어짐을 잘 알고 있다. 지난 18일 열린 3차 범국민대회에서 이들은 윤 대통령을 향해 “자리에서 내려오라”라며 퇴진을 요구했다. 

 

3차 범국민대회 모습. 파란 풍선과 깃발은 민주당을 상징한다. ⓒ 이인선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의 다수는 집회 후에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촛불대행진’으로 넘어온다. 이 집회에서는 최근 윤석열 퇴진에 더해 한·미·일 삼각동맹 반대, 대일 굴욕 외교를 강요하는 미국 반대 등 상당히 높은 수준의 반미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수만 명의 참가자들이 반미 구호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함께한다. 

 

18일 열린 촛불대행진 모습. ⓒ 이인선


지난 10일 한미연합훈련 반대를 외치며 용산 한미연합군사령부 앞까지 들어간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대학생 18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단 며칠 사이에 1만 3천 명에 가까운 국민이 탄원서를 작성해주었다. 인터넷상에서는 진보·통일운동 진영뿐 아니라 민주개혁 성향의 촛불 국민도 탄원서 작성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진연 측에서는 탄원서가 이렇게 빨리 모인 건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한국 국민은 미국의 구상과 달리 움직이고 있다. 과거 미국은 정치 공작을 하거나 노골적인 내정 간섭을 하며 한국을 자기 뜻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많은 국민이 ‘미국이 하라면 해야지’라며 체념하였고 ‘반미’는 언급도 하면 안 되는 금기어로 취급했다. 하지만 지금 국민은 미국이 뭘 하자고 해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그것이 국익에 부합하는지 따져보고 판단한다. 미국은 자기 국익을 위해 움직이지 우리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국민주권 의식의 분출이다.

(끝)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