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4.

정치적 위기 때마다 꺼내는 ‘여가부 폐지’

 

 

 

 

“여성가족부 폐지.”

 

[출처: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

 

 

2022년 1월 7일, 당시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일곱 글자를 대선 공약으로 내놓았다.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는 공약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가부 폐지’라는 입장을 낸 것이다.

‘여가부 폐지’ 공약은 지난해 10월 3일 대통령실과 정부, 국힘당이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논의한 뒤에 10월 6일 여가부의 청소년·가족, 양성평등, 권익증진 기능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설치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치권과 각계의 반발로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여가부 폐지는 제외됐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과 국힘당은 계속해서 여가부 폐지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정부의 조직개편안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그런데 여가부 폐지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지지율 반등을 노리고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페이스북에 쓴 시기는 청년층에서 지지율 하락세가 두드러진 시점이었다. 한국갤럽의 2022년 1월 4~6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 지지율은 이재명 후보가 24%, 안철수 후보가 23%였고 윤 후보는 10%이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은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조하면 된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이대남(20대 남성)의 표심을 잡기 위해 여가부 폐지 공약을 발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 결과 이대남은 윤 대통령에게 몰표를 줬다. 

그리고 지난해 여가부 폐지가 포함된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던 시점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한 비속어 발언을 했다. 이에 국민은 외교 참사, 나라 망신이라며 윤 대통령을 향한 비난을 쏟아냈다. 당시 윤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율은 24%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럴 때 여가부 폐지를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함으로써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 지지층을 다시 끌어모으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당시에 있었다.

286개의 시민사회단체는 논평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선 시기부터 근거도 내용도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하고, 대통령 지지율 24%라는 최저점을 찍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위기마다 ‘여성가족부 폐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라고 지적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도 “정부와 여당은 국정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여가부 폐지를 외치고 있다”라며 “이번 개편안도 다수당인 민주당이 반대할 수밖에 없는 안으로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한다기보다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 논란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노골적인 ‘여성 지우기’

 

 


윤석열 정권은 ‘여성 지우기’를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먼저 윤 대통령은 이른바 ‘서육남’ 내각을 구성했다. 서육남이란 서울대, 60대, 남성을 뜻한다. 여성 장관은 3명(15.8%)에 그쳐, 문재인 정부 1기 내각(26.3%)에 견줘 크게 줄었다.

윤석열 정권의 여가부 폐지 기조에 따라 각 지방자치 단체의 정책, 조례, 예산에서도 여성, 성평등 용어가 삭제되거나 성평등과는 관련 없는 용어들로 수정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주희 덕성여자대학교 여성학 교수는 지난해 12월 27일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하는 시민살롱’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정부의 기조가 각 정책 분야에서 '여성'이라는 단어를 지우는 방식으로 출발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2023년 여가부의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서 여성이 없다.

여가부는 2023년 6대 핵심 과제로 ‘▲다양한 가족, 촘촘한 지원 ▲아동‧청소년 보호 강화 ▲5대 폭력 등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확대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사회 ▲청소년을 미래인재로 양성 ▲가족‧청소년 지원 서비스 혁신’을 설정했는데 이 중에서 ‘여성’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 등장한다.

이를 두고 “여성 정책의 총괄 부서인 여성가족부에서 성평등, 여성 폭력 관련 의제를 외면하기 위해 ‘여성’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 “여성에 대한 차별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윤석열 정권의 기조가 드러난 결과”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리고 여가부에서 성평등과 관련된 사업이 사라졌다. 청년들이 참여해 성평등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취지의 ‘성평등문화추진단’ 사업은 2023년 예산에서 빠지고 대신 ‘지역 청년 공감대 제고’ 사업이 새로 예산안에 반영됐다. 

또한 여성 정책과 관련한 인원도 줄고 있다. 

여가부에서 양성평등 기본계획 수립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정책과의 경우 12명이었던 인원이 10명으로 줄었다. 여성인력 양성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여성인력개발과의 경우 7명이었던 인원이 5명으로 줄었다.

전국의 지방자치 단체도 여성 지우기를 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이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여가부 폐지를 공식화한 뒤에 전국의 지방자치 단체에서 여성이 들어간 부서의 명칭을 바꾸고, 기능을 축소하고 있다. 정부의 행정 체계에 따라 지방자치 단체의 행정 체계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의 경우 25개 자치구 가운데 8곳에서 여성이란 단어를 이미 뺐거나 2023년 뺄 예정이다. ‘여성가족과’를 ‘가족정책과’(금천구·도봉구·서대문구·강남구)로, ‘여성정책팀’을 ‘양성평등정책팀’(금천구·마포구 등)으로 바꿨다. 중랑구는 ‘여성가족과’를 ‘보육지원과’와 ‘아동청소년과’로 나눴고, 구로구는 ‘여성정책과’와 ‘상호문화정책과’를 통합해 ‘가족보육과’로 변경할 예정이다.

전국의 지자체 상황도 비슷하다. 강릉시는 ‘여성청소년과’를 ‘인구가족과’로, 거제시는 ‘여성가족과’를 ‘가족정책과’로, 고양시는 ‘복지여성국’을 ‘사회복지국’으로, ‘여성가족과’는 ‘가족정책과’로 바꿨거나 바꿀 예정이다.

여성이 사라진 곳에 ‘인구’와 ‘가족’만이 남고 있다. 

 

 

편을 나눠 갈등을 조장하는 정권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2월 21일 “여성부 신설은 역사의 흐름이며 여성이 남성과 대등하게 국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못 돼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와 권익증진을 중심으로 여성·가족 정책 및 청소년·아동 복지업무를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여성부’가 만들어졌다. 이로부터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여성 정책은 국가 정책으로 의제화됐고, 그동안 부처별로 추진돼 온 여성 정책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그 후로 한국 사회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민주주의의 한 축을 발전시켜 왔다.

윤석열 정권의 ‘여성 지우기’는 수십 년간 만들어온 한국 민주주의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서 여성이 아닌 ‘아이를 출산하는 도구로서 여성’을 앞세우고, 성평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없애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똑같이 일해도 여성은 남성보다 36% 부족한 임금을 받는다. 여성들에게는 고용의 기회도, 승진의 기회도, 경력을 유지할 기회도 공평하지 않다. 아직 한국 사회의 여성은 안전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을뿐더러,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사회적인 문제이기에 온 사회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여성이 처한 현실을 외면한 채, 절반에 이르는 국민인 여성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더 나아가 여성과 남성으로 편을 나눠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국민을 편 가르고, 분열을 조장하는 윤석열 정권은 더 이상 필요 없다.

 

 

 

김영란 주권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