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2.

북한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교재는 북한 헌법이다. 
헌법을 분석하다보면 북한 사회의 기본 이념과 국가 정체성,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 국가 정책과 노선을 잘 알 수 있다. 
이에 nk투데이 편집부는 북한 헌법을 하나하나 파헤쳐보는 연재를 기획하였다. 
분석할 북한 헌법은 현재 한국에서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최신판인 2019년 8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에서 수정보충한 헌법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표기법은 한국의 맞춤법을 따르되 불가피한 경우 북한 표기를 그대로 두었다. 
북한 헌법은 통일부, 법무부, 법제처가 공동 운영하는 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https://unilaw.go.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북한 헌법 제25조의 두 번째 내용은 ‘늘어나는 물질적 부를 전부 근로자의 복리 증진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무료의무교육제, 사회보험제와 정·휴양제, 영예군인우대제 등을 시행하고 있다. 

또 북한은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보장하며 노동재해, 질병으로 노동능력을 잃은 근로자, 장애인, 노인, 어린이의 생활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뒤의 관련 헌법 조항에서 다룬다. 

25조의 세 번째 내용은 ‘세금 폐지’다. 

 


■ 북한의 세금 폐지 과정


북한에는 세금이 없다. 

물론 북한에 처음부터 세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북한은 세금이 착취 사회에서 국민을 착취하는 나쁜 제도라고 여겼다.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는다’는 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말도 있듯 세금은 국가가 주민을 착취하는 기본 수단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세금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랐다. 

이런 민심을 반영해 북한은 세금을 없애기 위한 조치를 해방 직후부터 하였다. 

북한은 1945년 12월 14일 북조선 재정국 포고 제2호를 통해 58종의 세금을 21종으로 대폭 줄여 세금 제도를 간단히 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세금 간소화를 진행했다. 

북한이 세금 제도를 간소화한 이유는 기존의 세금 제도가 국민이 잘 이해하지 못하도록 복잡하게 되어 있어 수탈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왕이나 귀족들은 백성을 손쉽게 약탈하기 위해 새로운 세금을 만들어왔는데 이게 누적되다 보니 온갖 뜻 모를 세금이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현대로 넘어온 후에도 바뀌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부가가치세를 보자. 

1954년 프랑스가 처음 발명한 부가가치세는 이중과세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거의 모든 대상에서 매우 복잡하게 세금을 걷어가는 바람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저주하는 세금이다. 

하지만 정부 처지에서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국민을 약탈하는 ‘최고의 발명품’이므로 1960년대부터 유럽 각국을 거쳐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박정희 정권도 1977년 이를 도입했는데 도입 6년 만에 조세 수입 1위를 차지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소득세, 법인세와 더불어 ‘세수 3대장’을 차지하고 있다. 

부가가치세가 아니더라도 세금 제도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일반 국민이 세무사의 도움 없이 혼자 세금 처리를 하면 자기도 모르게 손해 보기 일쑤며, 기업의 경우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으면 무조건 걸리게 되어 있어 정부가 특정 기업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올 지경이다. 

또한 세금을 징수하는 세무서는 일반인에게 수탈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북한은 1946년 8월 2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결정 제56호 ‘세무서 폐쇄에 관한 결정서’에 따라 세무서를 없애고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에 설치한 세무과, 재정과로 세금 업무를 이관했다. 

북한은 1947년 2월 17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북조선인민위원회로 전환되자 곧바로 2월 27일 북조선인민위원회 법령 제2호 ‘북조선 세금 제도 개혁에 관한 결정서’를 채택해 세금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하였다. 

여기서는 세금을 국세 4개, 지방세 중 도·특별시세 6개, 시·면세로 4개 등 총 14개로 축소하였다. 

이후에도 북한은 세금 제도 개혁을 지속하여 대부분의 세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였다. 

특히 1951년 1월 13일 내각결정 제197호 ‘조국해방전쟁 시기에 있어서 인민생활 안정을 위한 제 대책에 관한 결정서’에 따라 국민 부담을 덜기 위해 가옥세, 대지세, 차량세 징수를 임시 중지하였다. 

통상 전쟁이 나면 정부에서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늘리는 것과 정반대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 세금은 이후 다시 징수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임시 중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최정욱, 「북한의 세금제도 폐지와 재도입 가능성에 관한 연구」, 『조세연구』 제19권 제3집, 한국조세연구포럼, 2019년 9월.)

1958년 북한이 사회주의적 개조를 완성하면서 일반 국민은 주민소득세와 지방자치세만 납부했으며 기업소와 협동농장은 거래세, 이익공제금, 농업현물세, 협동단체소득세만 납부하는 등 세금이 거의 없어졌다. 

1960년 8월 15일 김일성 주석은 경축대회 보고를 통해 “당과 정부는 생산의 급속한 장성에 기초하여 앞으로 수년 내에 농민들의 농업현물세와 노동자, 사무원들의 소득세를 완전히 폐지할 것을 예견”한다고 하여 세금 폐지를 예고하였다. 

또 1961년 9월 진행한 노동당 제4차 대회에서 노동자의 소득세와 농민의 농업현물세를 없애 근로자를 세금 부담에서 해방하며 실질 소득을 높이는 과제가 제시되었다. 

당시에 이미 북한은 국가 예산 수입의 많은 부분이 국영기업소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근로자의 세금은 아주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966년 4월 29일 최고인민회의 법령 ‘농업현물세제를 완전히 폐지할 데 대하여’를 채택해 농업현물세를 폐지했으며 이에 따라 국가 예산 수입에서 근로자의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도 되지 않게 되었다. 

1974년 3월 21일 최고인민회의 법령 ‘세금 제도를 완전히 없앨 데 대하여’를 채택해 그해 4월 1일부터 주민소득세, 협동단체소득세, 지방자치세 등 남아있는 모든 세금이 사라졌다. 

단, 거래세는 거래수입금으로, 이익공제금은 국가기업이익금으로 1960년대 초에 전환되었다. 

이는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상 기업이 벌어들이는 돈을 국가의 수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세금’의 성격이 아닌 ‘사회주의 경리 수입’의 성격으로 본 것이다. 

또한 관세는 국내 세금이 아니므로 계속 남았다. 

북한을 제외한 다른 사회주의 국가는 여전히 세금 제도가 남아있다. 

따라서 세금 폐지는 북한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