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9.

(이어서)

 


2. 북한의 ‘강압’에 시달리는 미국


미국 국가정보국장실(ODNI)은 6월 22일 「북한: 2030년까지 핵무기 활용 시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평가(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를 공개했다. 이 평가서는 올해 1월에 작성되었고 지난 6월 15일 기밀 해제되었다. 

미국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은 이 문서가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안보 문제”에 관한 “최고 권위의 전략정보문서”라고 하였다. (「[개벽예감 544] 헤인즈가 부분적으로 기밀 해제한 국가정보판단서」, 자주시보, 2023.6.26.) 그런데 국가정보평가가 우크라이나(혹은 러시아)나 대만(혹은 중국)이 아닌 북한을 다룬 것을 보면 미국이 가장 중대한 국가안보 문제로 꼽는 게 바로 북한임을 알 수 있다. 

이 평가서 내용을 보면 북한이 핵무기를 어떻게 사용할지를 3가지 경로로 분석하는데 실제 공격이나 단순 방어로 사용할 가능성은 작고 강압적 목적에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이걸 뒤집어 생각하면 지금 미국이 북한의 ‘강압’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특히 미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심각한 ‘강압’을 느끼고 있다. 북한은 아직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고각으로만 발사하고 있는데 만약 북한이 공언한 것처럼 정상 각도로 실거리 사격을 하면 미국은 발칵 뒤집힐 것이다. 

이 미사일이 미국 앞바다에 떨어질지, 내륙에 떨어질지 미리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미사일을 요격하면 북한이 전쟁 행위로 간주하고 진짜로 핵미사일을 내륙에 쏠 수 있다. 만약 요격을 시도했는데 실패하면 미국인들의 불안은 극도에 달할 것이며 전 세계 앞에 미국이 망신당할 것이다. 요격을 시도하지 않으면 북한은 앞으로 미국 앞바다를 자기 미사일 훈련장으로 종종 사용하게 될 것이다. 

지금 미국 패권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미국의 우방들도 하나둘씩 미국에 등을 돌리고 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마저 중국과 손을 잡으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 앞바다를 자기 미사일 훈련장으로 실사용한다면 미국 패권 붕괴의 결정타가 될 수 있다.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넘어가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 처지에서도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기에 북한의 군사 행동을 막아야 할 절박함이 있다. 

지난 6월 2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한의 세계보건기구(WHO) 집행이사국 선출을 축하하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본인 집권 시절에 북미 관계가 좋아서 미국이 안전했다는 것을 강조해 내년 대선에 승리하겠다는 속셈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내년 미국 대선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가 북한의 핵공격 위협이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바이든 대통령도 북미정상회담을 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략을 무너뜨리고 싶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하고자 한다면 북한의 요구를 일정하게 수용하면 된다. 북한을 겨냥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한반도에 전략 무기를 반입하지 말고,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일부라도 하면 북한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못 한다. 북한에 우위를 점하면서도 북한의 군사 행동은 막으려고 하니 답이 안 나온다. 그래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중국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호응해 주지 않으니 화가 나서 ‘독재자’ 발언을 내뱉은 것으로 보인다. 

 


3. 한국, 일본까지 동원하는 미국


미국이 블링컨 방중에서 북한 문제 해법을 찾는 데 공을 들인 것은 더불어민주당 움직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블링컨 장관 방중 열흘 전인 6월 8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만났다. 여기서 싱하이밍 대사가 바이든 대통령의 ‘베팅(도박 등에서 돈을 거는 행위)’ 발언을 흉내 내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한다”라고 하였는데 이 대표가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 정부·여당과 언론이 모두 들고일어나 싱하이밍 대사와 이 대표를 공격했다. 특히 민주당이 친중 사대주의를 한다며 신색깔론 공세를 폈다. 

지금까지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 적폐 세력이 공격하면 회피하거나 방어하면서 움츠러드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친중 사대주의’라는 공격을 받았는데도 12일 민주당 민생경제 위기 대책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4명이 중국을 방문하는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당연히 국힘당과 보수 언론은 민주당을 맹비난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15일 2차로 국회의원 7명을 더 보냈다. 매우 특이한 모습이었다. 

민주당 방중 의원단은 18일 귀국했다. 그러나 정부·여당과 언론은 크게 부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도종환, 민병덕 의원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티베트 인권 문제는 70년 전 일이라는 식의 발언을 했음에도 조계종에서 항의한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쟁점이 되지 않았다. 평소대로라면 이 사안만으로도 정부·여당이 민주당을 공격하고 극우 유튜버들이 민주당사 앞에서 난동을 부리며 온통 언론을 뒤덮었을 것이다. 

적폐 세력이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민주당을 향한 공격을 멈춘 것은 이들 전체를 지휘하는 미국의 입김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아마도 미국은 ‘민주당 중국 방문은 우리 뜻이니 방해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듯하다. 

미국은 블링컨 장관 방중에 맞춰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 한국을 동원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반중 행동대장 역할을 하다 보니 정부·여당은 활용할 수 없다. 그래서 민주당을 동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민주당의 중국 관련 행보가 모두 5월 25일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난 뒤에 일어난 것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민주당은 북한이 군사 행동을 자제해야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유리하며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해야 판문점선언 이행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로 북한을 설득해달라고 중국에 요청할 수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 내 쟁점도 아닌 북일정상회담을 자꾸 강조하는 것도 어떻게든 북한의 군사 행동을 막기 위한 미국의 입김에 따른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한국, 일본을 모두 동원해 가능한 통로를 열어보려고 시도하는 것을 봐도 북한의 군사 행동을 막는 게 미국의 사활이 걸린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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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처지에서는 북한이 선군정치를 하며 미국에 강압적 태도를 보이면서 몸값이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의 군사 행동을 강압으로 느끼며 중국이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중국은 미국에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14일 미중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을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핵시험을 막아달라고 요구했다.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기 위해 미국이 그만큼의 반대급부를 지급했으리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 세력은 국제 질서 변화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세계 패권은 급격히 무너지고 있으며 북한에 ‘강압’을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때일수록 한국의 정치 세력은 판문점선언을 계승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보여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승인’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결정하는 민족 자주, 민족 자결을 내걸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