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7.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12~18일 러시아를 방문했다. 북러정상회담을 포함해 방러 일정 전반을 봤을 때 국제 정세에 심각하고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특집을 6편으로 준비하였다.

 

(이어서)


다) 북러 우주개발 협력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의 정상회담

 

 

▲2023년 9월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북러정상회담이 열렸다.



9월 13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우주개발에 관한 북러 양국의 협력이 이전보다 더욱 강화될 것임을 짐작케 하는 장면이었다.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20년이 넘도록 카자흐스탄에 있는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를 빌려 써야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2018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완공해 러시아 우주개발 사업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런 장소에서 북러정상회담이 열린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해 러시아 국영우주공사 로스코스모스 사장 등 관계자들과 운반로켓 조립·시험 종합동을 돌아봤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소유스-2, 안가라 등 러시아의 운반로켓에 쓰인 기술과 기지의 운영 실태, 러시아의 우주산업 현황과 전망도 세세히 파악했다.

러시아 국영 방송 ‘러시아 1’ 등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관계자에게 “(로켓에서 분리된 물체의) 첫 번째 부분은 땅에, 두 번째 부분은 바다에 떨어지는가”, “보조 부품까지 포함해서 직경이 8미터인가”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했다. 이 모습을 본 푸틴 대통령은 “당신은 전문가입니다”라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평가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주개발과 관련한 기술에 상당한 전문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방명록에 “첫 우주정복자들을 낳은 로씨야[러시아]의 영광은 불멸할 것이다. 김정은 2023.9.13”이라고 친필 서명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방명록에 친필 서명을 하고 있다.



이후 기지 내부 회담장에서 북러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장에 내걸린 펼침막 배경에는 우주로 올라가는 로켓과 인공위성, 발사대 시설 그림이 부각됐다. 또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우주복 장갑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는 북러 정상 간 우주개발과 관련한 논의와 합의가 이뤄졌음을 추정케 한다.

 

● 북러 우주개발 현황


소련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유인우주선을 쏘아올린 우주강국이다.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의 우주비행선 소유스는 가성비가 좋아 미국 국적 우주비행사도 이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러관계가 틀어진 2022년 9월에도 미국, 러시아 우주비행사가 함께 탄 소유스호가 발사됐다. (「지구서 싸워도 우주갈 땐 사이좋게…미·러 태운 소유스호 안착」, 연합뉴스, 2022.9.22.)

북한 역시 인공위성을 수차례 쏘아 올리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1998년 인공위성 광명성-1호 발사를 시작으로 2009년에는 광명성-2호, 2012년에는 광명성-3호를 발사했다. 또 2016년에는 기술력이 더욱 발전된 지구관측위성 광명성-4호를 발사했다.

또한 북한은 로켓 기술이 적용된 화성포-17, 18형을 자체의 힘으로 발사할 수 있을 만큼 로켓 기술 수준도 높다. 

북한은 우주개발을 관장하는 국가우주개발국을 통해 우주개발을 적극 추진해왔다.

북한은 2013년 4월 1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7차 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우주개발법을 발표했다. 국가우주개발국 창설을 통한 “평화적 우주개발 이용권을 당당히 행사해 나갈 수 있는 법적 지도”와 “국가의 통일적인 지도에 따른 우주개발 활동” 등이 강조됐다. 

당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인공위성의 다기능화·고성능화를 통해 경제 건설, 국민 생활 향상, 방위력 강화, 농업과 수산, 기상 관측, 재해 감시, 자원 탐사, 통신 체계 개발 등 다방면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북한의 관점에서는 위성으로 자신을 적대하는 한국과 미국을 감시, 정찰할 수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4월 18일 국가우주개발국을 현지지도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군사 활동을 겨눠 “앞으로 연속적으로 수 개의 정찰위성을 다각 배치하여 위성에 의한 정찰 정보 수집 능력을 튼튼히 구축”할 것을 지시했다.

북한은 올해 국가우주개발국 창설 10주년을 맞아 정찰위성 발사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은 올해 5월과 8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두 차례 정찰위성 ‘만리경-1호’ 발사를 단행했지만 우주 궤도에 올려놓지 못했다. 

국가우주개발국은 발사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오는 10월 중 3차 발사를 성공시키겠다고 밝혔다. 3차 발사가 북러정상회담 이후 실시되는 만큼, 북러가 협력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 북러 우주개발 협력 전망


9월 15일 BBC코리아는 북러 우주개발 협력에 관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보도했다. 

장영근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센터장은 북한의 인공위성이 “예전 위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달라졌다”라면서 북한의 위성 기술을 높이 평가했다. 북한이 공개한 정찰위성 사진을 보면 태양전지판 4개로 된 전지판이 쓰였는데 이는 위성을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또 장 센터장은 “탄도미사일은 핵타격을 하는 주먹이라고 하면 감시정찰자산은 눈이다. 눈으로 봐야 정확히 때릴 수 있는 것”이라며 정찰위성 분야에서 러시아가 북한을 도울 가능성을 주목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러시아의 소유스-2나 안가라 로켓 시설을 빌려 정찰위성을 발사하거나, 북한 기술자가 러시아의 정찰위성 제작 과정에 참여하면서 일부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오늘날 우주개발은 세계에서 ‘절대 강자’가 없는 영역으로 평가된다. 미 우주군 초대 참모총장인 존 레이먼드는 9월 14일 한 행사에서 “우주는 과거 미국과 옛 소련 두 나라의 양강 구도였지만 지금은 많은 나라가 가능성을 보고 뛰어든 시대”라고 현 국면을 짚었다. (매일경제, 「우주는 절대강자 없는 춘추전국…스타워즈서 지면 지구서도 완패」, 2023.9.14.)

또 우주는 국제법상 어떤 나라의 소유물도 아니며,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가 통하지 않는다. 우주개발과 관련해 북러가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협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올해 4월 1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가우주개발국의 과학자들은 우주과학 연구와 위성발사 분야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 우주를 정복하여야 합니다”라면서 “우주를 정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도 올해 4월 우주인의 날 행사 연설에서 “달과 태양계 내 다른 행성에 대한 탐사를 가능한 빨리 다시 시작해야 한다”라면서 우주개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북러 정상이 우주개발에 큰 관심을 보인 만큼, 북러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긴밀한 협력을 통해 우주개발 분야에서 다른 나라를 치고 나가려 할 수 있다.

BBC코리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북러정상회담 이후 ‘러시아가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것인가’라는 현지 기자의 질문에 “그래서 우리가 이곳(우주기지)에 온 것”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은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인다. 그들은 우주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9월 13일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북한의 우주비행사가 러시아 우주선에 탈 가능성을 언급했다. 머잖아 ‘북한의 첫 우주비행사’가 러시아 우주비행사와 함께 태양계 탐사에 나서는 장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러시아의 지분이 큰 국제우주정거장에 북한 우주비행사가 승선해 우주 연구와 정거장 시설 공동 개발과 정비 등을 할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북러 양국이 협력하게 될 우주개발의 귀추가 주목된다.

 

3) 새로운 세계: 북·중·러 중심 ‘동북아 시대’로

 

북한은 9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6차 정치국 회의를 열어 북러정상회담을 높이 평가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북러정상회담을 두고 “이번 방문을 계기로 조로[북러]관계가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새로운 전략적 높이에 올라서고 세계 정치 지형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라고 규정했다. 

세계 정치 지형의 근본적인 변화란 첫째로는 미국 패권 중심의 일극 체제에서 세계 각국이 대등한 목소리를 내는 다극 체제로, 둘째로는 미국 중심의 대서양 시대에서 북·중·러 중심의 동북아시아 시대로 전환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해볼 수 있다.

 

가) 일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앞으로 북한은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북·중·러 등 세계 여러 나라가 주도하는 다극 체제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패권을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13일 진행된 북러정상회담에서 “이번 방문은 국제무대에서 진보와 반동, 정의와 불의의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자주적인 세력들의 공동 의지와 단결된 힘으로 세계의 다극화 과정이 힘차게 전진하고 있는 시기에 이루어졌다”라며 북러정상회담의 의의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러시아는 패권주의 세력에 맞서서 자기 주권적 권리와 안전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 정의의 위업을 벌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양국 관계를 더 발전시키고자 한다”라면서 “우리는 항상 푸틴 대통령의 모든 결정과 러시아 정부가 취하는 모든 조치에 전적인, 무조건적인 지지를 표명해 왔고, 앞으로도 언제나 반미자주 전선에서 러시아와 함께 있을 것임을 이 기회를 빌려서 확언하는 바”라고 역설했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푸틴 동지와 나는 방금 조선반도[한반도]와 유럽의 군사적, 정치적 정세에 대하여 심도 있는 논의를 하였으며 우리는 지역과 세계의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에서 전략·전술적 협력, 지지와 연대를 더욱 강화해 나가자는 데 만족할 만한 합의를 이룩하였다”라고 밝혔다.

9월 14일 조선중앙통신은 북러정상회담에서 “인류의 자주성과 진보, 평화로운 삶을 침탈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 강권과 전횡을 짓부수기 위한 공동전선”이 강조됐다고 전했다.

또 “두 나라 사이의 전략전술적 협동을 더욱 긴밀히 하고 강력히 지지연대하면서 국가의 주권과 발전이익,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 국제적 정의를 수호해 나가는 데서 중대한 문제들과 당면한 협조 사항을 허심탄회하게 토의했으며 만족한 합의와 견해 일치를 봤다”라고 했다.

이를 통해 북러 간 미국에 맞선 연대, 다극화와 관련한 논의가 오갔을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나) 대서양 시대에서 동북아 시대로


북한은 미국과 서방이 좌우하던 대서양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열어젖히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서양 시대는 제국주의 열강의 노예사냥과 식민 통치로 대표되는 ‘침탈의 시대’로 정의할 수 있다.

미국에 맞서 한목소리를 내는 북·중·러의 관계를 생각할 때, 북러 협력은 곧 북·중·러 연대로 이어지리라 추정해볼 수 있다. 북·중·러가 있는 동북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물자가 밀집돼 있으며, 성장 잠재력 역시 가장 높은 지역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북·중·러 연대를 통해 대서양 시대를 넘어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열 수 있으리라 판단하는 듯하다. 북·중·러가 다방면으로 협력해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동북아로 옮겨가면 기존의 국제질서는 송두리째 뒤집히게 된다. 군사적으로는 북·중·러의 군사력이 미국과 나토를 압도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정치·외교적으로 보면 서방 주도의 G7은 몰락하고 북·중·러의 목소리가 더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경제적으로는 북·중·러가 내리막길을 걷는 미국을 대신해 세계 경제를 이끌면서 막강한 입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9월 16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함대를 참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경례를 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과 서방은 정치적 대혼란, 경제적 침체, 군사적 무기력에 빠져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북한은 북·중·러를 중심축으로 세계적 차원의 발전, 번영, 활력의 시대를 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다) 새로운 관점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은 이전부터 기존의 틀을 깨고 자신의 힘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해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학창 시절 삼국을 신라가 통일했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며, 신라와 발해가 공존하는 남북국시대로 바뀐 것이라고 주장해 학계에 충격을 던졌다고 한다. 

고구려, 백제 멸망 이후의 시대를 신라와 발해를 포함한 남북국시대로 봐야 한다는 견해는 국내 학계에서도 비교적 최근 인정받게 됐다. 이전에는 ‘신라가 당나라의 협조를 받아 대동강 이남의 땅이라도 통일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외면하며 스스로를 약소민족으로 깎아내렸던 것이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 틈새에서 고통을 당할 운명이라는 기존 통념을 깼다. 북한을 강대국으로 만들어 주변 강국들을 끌고 다니면 세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꽃패’를 손에 쥔 행운의 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 것이다.

2022년 10월 23일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는 자본주의가 흉내 낼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사회주의의 우월성과 위력을 고도로 발양시켜 하루빨리 강성국가를 일떠세워야 한다”라면서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하늘과 땅처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은 미국 중심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를 극복해서 ‘지금껏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초월 세계’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9월 14일 페이스북에서 “북러정상회담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실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이번 북러정상회담은 군사기술적인 영역을 훨씬 뛰어 넘는다”라고 주장했다.

 

(계속)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