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10.

(이어서)

 

북한 정찰위성에 무기력한 모습


북한이 지난해 11월 21일 밤늦게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발사하자 정부는 즉각 대응 논의에 들어갔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22일 새벽 3시 전국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어 9.19남북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에 관해 논의하고 군사 대비 태세 유지를 당부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국빈 방문 중이던 영국에서 화상으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주재하며 대응 조치를 지시했다. NSC 상임위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9.19군사합의 1조 3항 효력 정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곧바로 한덕수 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효력 정지를 의결했고 윤 대통령이 재가했다.

9.19군사합의 1조 3항은 군사분계선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한 것이다. 정부는 효력 정지와 함께 군사분계선에 정찰기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방부는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나머지 조항도 효력 정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북한은 하루 만에 국방성 성명을 통해 9.19군사합의 폐기를 선언했다. 이 때문에 일부 조항 효력 정지에서 출발해 9.19군사합의를 점차 무력화하는 식으로 북한을 압박하려던 국방부의 구상이 깨져버렸다.

다소 허무하게도 정부 당국의 북한 정찰위성에 대한 대응은 이게 전부다.

 

 

9.19군사합의에 따라 폐쇄했던 고성 GP. [출처: 문화재청]


북한이 작년 5월 정찰위성 발사 계획을 공개하자 외교부는 5월 29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끝내 발사를 강행한다면 그에 대한 응분의 대가와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는 긴밀한 한·미·일 공조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과연 북한에 “응분의 대가와 고통”을 주었는지 의문이다.

정부의 유일한 대응인 9.19군사합의 일부 조항 효력 정지는 북한에 ‘고통’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북한에 ‘고통’이었다면 북한은 효력 정지 조치를 비난하며 합의 복귀를 촉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루 만에 합의 자체를 폐기해 버렸다. 이는 9.19군사합의 폐기가 북한에 유리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9.19군사합의에 따라 중지했던 군사 조치를 즉시 회복한다고 하였다. 나아가 군사분계선 지역에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하겠다고 했다. 정부의 조치가 오히려 북한에 도움을 준 꼴이 되었다.

9.19군사합의 일부 조항 효력 정지가 부적절한 대응이었다는 주장은 국내 전문가들 속에서도 나온다. 일단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9.19군사합의와 무관하다는 지적이 있다. 또 국방부는 북한이 그동안 9.19군사합의를 수시로 위반했다는 명분을 들고 있는데 이 역시 비판을 받는다. 합의를 안 지키면 합의를 지키도록 만들어야지 아예 합의 자체를 없애버리면 합의를 더 지키지 말라고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켄 고스 해군분석센터(CNA) 국장도 “군사합의 파기는 한국의 내부용이지, 북한의 행동을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면서 “한국이 합의 파기로 얻는 이득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 국장도 “한국이 9.19합의를 파기한다면 북한은 더 지독한 방식으로 이를 위반하게 될 것”이라고 부정적 의견을 냈다. (「美 전문가들 “9·19군사합의 파기해도 북한 도발 막지 못해”」, 동아일보, 2022.10.15.)

정부가 강조한 ‘한·미·일 공조’를 통한 대응도 거의 한 게 없다. 유일하게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지난해 11월 30일 “북한의 대리인 8명을 제재”했다고 밝힌 게 전부다. 이미 사상 최고 수준의 대북 제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정도의 대북 추가 제재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3일 전인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정찰위성 발사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지만 별다른 결론 없이 2시간여 만에 끝난 사례도 있다.

국내 언론 반응도 예상외로 차분하다. 물론 북한을 비난하고 정찰위성의 성능을 깎아내리는 식의 보도를 내보내고는 있지만 과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보이던 정도의 ‘호들갑’이 보이지 않는다. 총선을 앞두고 북한의 군사 행동을 연일 부각하는 것과도 분위기가 다르다.

한편 한국도 지난해 12월 2일 미국의 민간 우주로켓을 이용해 첫 정찰위성을 발사했다. 정찰위성을 보유한 나라는 10여 개국밖에 되지 않으므로 상당히 자랑할 만한 사건인데 정작 정부나 언론은 크게 홍보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바로 10여 일 전에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규탄하고서 한국의 정찰위성을 자랑하려니 민망했을 수 있다. 만약 한국의 정찰위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북한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찰위성 발사 장면. [출처: 스페이스X]


이처럼 북한 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너무 조용하고 무기력하다. 북한을 압박할 수단이 더 이상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일을 키울수록 북한의 능력을 홍보해 주는 꼴이 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한·미·일과 서방의 힘이 그만큼 없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예전에 비해 대응이 약하다.

반면 북한은 연일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홍보한다. 정찰위성 발사 직후에는 매일 만리경 1호가 보낸 사진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열람했다고 보도하더니 지난해 연말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는 2024년에 3개의 정찰위성을 추가로 발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미 우주군이 북한 정찰위성의 작동을 막을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밝히자 곧바로 국방성 대변인 담화를 발표(2023.12.2.)해 미국의 첩보위성도 “소멸 대상”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두고 중국의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미국의 전략 폭격기, 항모 전투단의 빈번한 한반도 등장에 주의한다”라며 미국을 비난하면서 “관련 각국은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해결이라는 큰 방향을 견지”하자고 촉구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부 차관도 “정찰위성은 무기가 아니다”라며 북한을 옹호했다.

북한 정찰위성 발사를 둘러싼 모습을 보면 무언가 국제질서가 달라진 것은 아닌지 이상한 느낌을 준다.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들과 추종국들이 있는 힘을 다 모아서 북한을 때렸는데 오히려 대북 포위망이 무너지고 국제질서는 미국의 구상과 다른 길로 가고 있다. 세상이 변하는가 하는 이상한 예감이 든다.

(끝)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