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

1. 5년째 나오지 않은 신년사

 


북한은 2020년부터 5년째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올해는 지난해 12월 26일~30일 진행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제9차 전원회의)를 통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원회의 보고와 강령적 결론 ‘2024년도 투쟁방향에 대하여’로 신년사를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 제9차 전원회의의 한 장면. 

 

 


북한은 신년사를 통해 전년도를 평가하고 새해 국가 방향과 계획 및 과업을 국민에게 제시해 왔다. 최고지도자가 주민들의 뜻을 모아 발표하는 신년사의 특성상, 주민들은 과업을 자신의 요구로 인식하고 관철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조선중앙텔레비전을 통해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그런데 2020년부터는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원회의가 열린 2020·2022·2023·2024년에는 전원회의를 통해 결정서를 발표했다.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8차 당대회)가 있었던 2021년에는 전원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이를 볼 때 북한에서는 전원회의 보고가 기존 신년사를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2. 전원회의 보고와 8차 당대회의 연관성…민주성 강화

 

 

북한에서 5년째 신년사가 나오지 않은 것은 2021년 연초에 열린 8차 당대회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8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북한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짚어보려 한다.

 

 

▲ 8차 당대회에서 개회사를 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대중은 훌륭한 선생”,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치” 등의 표현을 강조했다. 나라의 정책과 방향이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 집행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강조하는 민주성 강화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 듯하다.

북한은 2020년 8월 19일 당 중앙위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를 열어, 8차 당대회를 2021년 1월에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8차 당대회를 앞둔 4개월 동안 북한에서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농민, 지식인 당원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는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비상설 중앙검열위원회를 만들어 각지에 파견했다고 밝혔다. 

검열위는 지난 5년 동안 잘못한 것은 무엇인지,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은 건 무엇인지, 실리적으로 한 건 무엇이고 형식적으로 한 것은 무엇인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고, 당적 지도에서의 결함은 무엇인지 등을 “빠개놓고 투시”했다고 한다. ‘빠개놓다’는 ‘어떤 내용이나 내막 따위를 사실대로 다 드러내 놓다’라는 뜻이다. 북한은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지난 5년의 실태와 문제점을 꺼내놓고 논의한 듯하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 개회사를 통해 “이 과정에 우리는 대중이야말로 훌륭한 선생이라는 귀중한 진리를 재삼 확인하게 되었으며 당대회를 준비하면서 당조직들과 당원들의 의견을 널리 듣기로 한 것이 정말 옳았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라고 밝혔다.

8차 당대회에는 7,000명(대표자 5,000명, 방청 2,000명)이 참석했다. 2016년에 열린 7차 당대회에는 5,054명이 참석했는데 2,000명 정도 더 많아진 것이다. 구성원의 변화도 주목되는데 당정치일꾼·국가행정경제일꾼·현장 핵심당원 대표 인원이 크게 늘었다. 7차 당대회와 비교하면 8차 당대회에는 현장에서 일하는 기층 당조직에서 참석한 비중이 21.4%에서 29.1%로 많이 증가했다.

아래는 2016년 7차 당대회, 2021년 8차 당대회 참가자 수를 비교한 것이다.

 

 

-당정치일꾼 대표: 1,545명 → 1.959명 _414명 증가

-군인 대표: 719명 → 408명 _311명 감소

-국가행정경제일꾼 대표: 423명 → 801명 _378명 증가

-근로단체일꾼 대표: 52명 → 44명 _8명 감소

-과학, 교육, 보건, 문화예술, 출판보도부문 일꾼 대표: 112명 → 333명 _221명 증가

-현장 핵심당원 대표: 786명 → 1,455명 _669명 증가

-항일혁명투사: 6명 → 0명 _6명 감소

-비전향 장기수: 24명 → 0명 _24명 감소

 


7차 당대회와 8차 당대회의 참가 인원을 비교하면 전체 대표자 인원은 3,667명에서 5,000명으로 1,333명이 늘었다. 또 방청은 1,387명에서 2,000명으로 613명이 늘었다.

이는 앞서 당 중앙위 제7기 제6차 전원회의 결정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를 소집할 데 대하여」에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대표자 선출 비율은 당원 1,300명당 결의권 대표자 1명, 후보 당원 1,300명당 발언권 대표자 1명으로 한다”라고 명시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8차 당대회의 참가 인원을 크게 늘렸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 폐회사에서 “전체 대표자들이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우리 혁명사업의 성패와 자기 자신의 운명, 자식들의 운명과 결부시켜 고심하고 걱정하면서 토의되는 모든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연구하였으며 긴장한 대회 사업에 정열적으로 참가하였습니다”라고 평가했다. 

노동신문이 보도한 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 요약본은 지난 5년 동안 “당의 존망과 사회주의의 성패를 좌우하는 근본문제, 기본정치 방식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강력히 일관하게 실시함으로써 당과 ‘인민’의 일심단결을 더욱 반석같이 다지는 데서, 사회주의 위업의 주체를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는 데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라고 짚었다.

이를 볼 때 북한 사회는 이전보다 더욱 많은 주민들의 의견과 평가를 듣고 나라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려 하는 듯하다. 이 역시 민주성 강화의 사례로 꼽아볼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기에는 성원들이 참여하는 각종 대회도 수시로 진행됐다. 북한은 8차 당대회를 개최한 2021년 한 해에만 8차 당대회 기간 열린 1차 전원회의(1.10)를 시작으로, 2차 전원회의(2.8~11), 3차 전원회의(6.15~18) 4차 전원회의까지(12.27~31) 전원회의를 이례적으로 4차례 열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기 들어 시·군당책임비서강습회와 도·시·군당 조직부 당생활지도과 일꾼 특별강습회, 선전부문일꾼강습회를 비롯해 지도계선별, 공작부문별대회와 강습, 부문별 회의 등이 진행됐다고 한다. 여러 부문에서 대회에 참여하는 만큼 일꾼들이 당의 정책과 노선을 정확히 파악해 주민들에게 빠르게 알릴 수 있는 효과가 있을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9차 전원회의를 통해 식량·경제 분야 등에서의 위기를 ‘인민’, 일꾼, 간부의 힘으로 돌파해 성과를 낸 점을 거듭 강조했다. 나라의 위기를 이겨내는 데 지도부뿐만 아니라 북한 전체 성원들의 책임 있는 자세와 역할을 중요시한 것으로 짐작된다.

 

 

3.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사례

 

 

북한 사회가 민주성을 점차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북한은 2019년 8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해 대안의 사업체계를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으로 전환했다. 

김일성 주석 시기인 1961년 도입된 대안의 사업체계는 기업소의 당위원장, 지배인, 기사장, 노동자단체 대표, 청년단체 대표 등이 집단 관리를 하고 특히 당위원장, 지배인, 기사장 세 명이 일상적으로 기업소 운영을 함께하는 체계다. 이는 해방 뒤 지배인이 기업소 운영권을 독점케 한 ‘지배인 유일 관리제’에서 변화한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기인 2019년 들어 지배인 유일 관리제는 전체 성원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으로 전환됐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당위원회를 중심으로 기업소 구성원 전체가 모여 경영을 책임지는 형식으로 추정된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소수 대표자가 모여 결정하던 기존 방식을 전체 성원이 함께 결정하도록 바꾼 것이다. 주민들이 일하는 아래 단위인 기업소 성원들의 책임과 역할을 키운 셈인데, 이를 통한 민주성의 강화를 모색한 듯하다. 

이 사례는 북한이 점차 민주성을 강화하고 있는 과정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4. 맺음말

 

 

연말·연초에 나오는 전원회의 보고와 결정서는 기존 신년사와 체계는 비슷하지만 분량이 더 방대하다. 북한이 언론에 공개한 전원회의 보고는 과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는데 이를 볼 때 실제 내용은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각 지역과 단위 등 집단에 속한 북한 주민들은 저마다 제시된 과업을 관철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전원회의 보고 방식은 신년사 발표와 비교해 집단의 힘을 통해 정책을 이전보다 구체화, 정교화할 수 있는 강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북한은 주민들의 뜻을 모아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방향을 결정하는 방식을 계속 강화할 듯하다.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