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

(아침햇살285에 이어서)

북한

 

 

1) “전쟁은 현실”, “점령·평정·수복” 공식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6~30일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전쟁’이라는 말은 이미 우리에게 추상적인 개념으로가 아니라 현실적인 실체”라고 분석하고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라고 지시하였다. 즉, 전쟁 발발은 ‘현실’이고 ‘기정사실’이라는 것이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점령’은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지배하는 것이며, ‘평정’은 난리를 평온하게 진정시키는 것이다. 즉,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군이 내려와 한국을 지배하고 저항을 완전히 진압해 평온한 상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또 ‘수복’이란 잃었던 땅을 되찾는 것인데 북한은 ‘한국 점령·평정’을 ‘미국에 빼앗긴 한반도 남쪽 지역을 되찾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또 북한 영역에 ‘편입’한다는 것은 한국의 체제,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북한의 행정구역에 넣어 북한과 동일한 체제로 통치하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북한의 새로운 대남 정책을 보면 평화통일의 원칙이 폐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대남 협상 기구들을 모두 해체해 버린 것도 마찬가지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 역시 ‘선제타격’, ‘압도적 대응’, ‘처절한 응징’에 이어 최근에는 ‘즉·강·끝’, ‘선조치 후보고’ 등 전쟁을 기정사실화하고 부추기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또 ‘평화통일’의 담당 부처인 통일부마저 대북 강경론자가 장관 자리에 앉아 북한 붕괴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전쟁을 방불케 하는 핵전쟁 훈련을 연일 강도 높게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남북 어디에서도 평화통일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 한반도에는 전쟁만 남아있다.

 

 


2) 여유와 기만


북한의 새해 군사 행동은 상당히 특이하고 교묘하여 한미를 혼란에 빠트렸다.

일단 새해 첫날부터 고강도로 진행된 한미의 사격 훈련이 잦아들기를 기다린 북한은 1월 5일 서해에서 200여 발의 포사격을 진행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폭음 소리만 내고 7일에는 다시 88발의 포사격을 실시했다. 그러면서 전날 한국군이 북한의 포사격이라 주장한 게 실은 폭음 소리만 낸 것이었다고 발표하면서 한미 군 당국을 혼란에 빠트렸다. 결국 한국군은 5일에만 대응 사격을 하고 6, 7일에는 대응 사격을 하지 못했다. 북한의 기만전술에 당한 셈이다.

당장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고 그게 순식간에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도 있는 긴장된 시기에 이런 기만전술을 사용하고 그걸 곧바로 공개해 우리 군 당국을 조롱한 것을 보면 북한이 상당히 여유롭게 상황을 대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북한은 전부터 이런 지능적 기만전술로 유명했다.

북한이 북한군의 뿌리로 여기는 항일유격대의 기록을 보면 일제나 만주군을 상대로 펼친 다양한 기만전술이 나온다.

예를 들어 1933년 4월 일제가 소왕청 유격구를 포위하고 공격했던 소왕청 방위전투 당시 김일성 주석은 유격구 안에서 방어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기만전술을 적극 활용하였다고 한다. 특히 밤이 되면 일제 토벌군이 숙영하는 곳으로 소수 유격대를 파견해 습격하고 빠지도록 하였는데 이게 상당한 효과를 냈다고 한다. 일단 어두운 밤이라 적아를 구분할 수 없어 잠에서 깬 토벌군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동안 유격대는 자리를 피해 다음 숙영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게 반복되자 토벌군은 언제 습격당할지 몰라 밤마다 잠을 잘 수 없어 큰 고통을 당했다고 한다.

1935년 6월 로흑산전투는 전형적인 매복전이었다. 당시 항일유격대는 만주국의 정예 부대였던 정안군을 상대로 매복전을 하였다. 정안군은 겨울에만 토벌을 하고 여름에는 항일유격대를 피해 마적이나 토비만 공격했다. 그래서 항일유격대는 일부러 대낮에 부대를 이동해 유격대가 떠난 것처럼 꾸민 다음 소수의 병사를 마적으로 위장해 정안군을 유인했다. 이틀째에야 유인에 걸려든 정안군은 항일유격대가 매복한 곳까지 쫓아왔다가 몰살당하였다고 한다.

1936년 8월 항일의용군과 연합하며 무송현성을 공격할 때도 유인작전을 펼쳤다. 무송현성은 규모가 큰 시가지로 방어 병력도 많았기 때문에 항일유격대가 정면으로 공격하기에 불리했다. 그래서 먼저 무송현성 서남쪽의 만주군을 공격해 무송현성의 병력을 유인한 다음 주력부대가 무송현성을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1936년 9월에는 장백현 이도강 부근 마등창 숲에서 일제 토벌군끼리 전투를 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마등창 숲에 휴식을 하던 항일유격대를 토벌군이 남과 북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했다. 그런데 숲이 너무 무성한 나머지 항일유격대가 숲을 슬쩍 빠져나와 옆 언덕으로 피했음에도 토벌군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전투를 시작했다. 전투가 3시간이나 이어지자 이를 구경하던 항일유격대가 지루해했다고 한다. 북한은 멀리서 구경하는 전투였다고 해서 이 전투를 마등창 망원전투라 부른다.

1938년 말~1939년 초 항일유격대가 부후물 언덕을 지나며 사용한 선회전술도 유명한 기만전술이다. 당시 항일유격대는 추격하던 토벌대를 피해 부후물 언덕을 빙빙 돌았다. 이때 항일유격대를 지휘하던 김일성 주석은 대원들에게 나무를 찍어 메고 행군하게 시킨 다음 중간에 나무를 눈 위의 나무그루터기 위에 놓고 다리 삼아 건너가게 하였다. 그러고는 흔적을 지우자 추격하던 토벌대는 눈치를 못 채고 계속 언덕을 돌았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자기편 꽁무니를 발견하고는 항일유격대로 착각해 공격을 시작하여 밤새 서로 전투를 하였다고 한다. 그 사이에 항일유격대는 멀리 행군해 가버렸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창안한 항일유격대의 각종 전술을 지금도 연구하며 가르친다. 즉, 지금의 북한군도 항일유격대의 기만전술에 능숙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군대뿐 아니라 미국을 상대하는 외교 부문도 기만전술에 도가 튼 듯하다. 대표적으로 1998년 금창리 사건이 있다.

1998년 8월 초, 미국은 인공위성 사진을 근거로 북한의 금창리에 지하 핵시설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찰을 요구했다. 북한은 핵시설이 아니라며 사찰을 거부하면서 대신 3억 달러의 참관료를 내고 구경하는 건 허용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사찰에 보상은 있을 수 없다고 맞섰다.

그러다 결국 1999년 2월 27일 시작된 북미 금창리 4차 회담에서 미국은 3억 달러어치의 식량을 참관료로 지불하고 문제의 ‘금창리 지하 시설’을 구경하기로 합의하였다. 합의문에는 사찰(inspection) 대신 접근(access)이라고 명시했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외교술에 미국이 또다시 당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홍은택, 「[北-美협상 사실상 타결] 北 ‘벼랑끝 외교’ 판정승」, 동아일보, 1999.3.13.)

그런데 미국의 ‘구경’ 결과 금창리 지하 시설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땅굴이었다. 미국은 이 정체불명의 지하 시설을 만드는 데 10년 이상 걸렸을 것으로 추정했고 규모나 형태, 시설을 볼 때 어떤 용도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수수께끼라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식량을 받아내려는 북한의 미끼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미 국무부는 그리스군이 남겨놓은 목마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해하는 트로이군의 심정을 느꼈다. (김종수, 「‘北 금창리 왜 지었을까’ 美서도 알쏭달쏭」, 중앙일보, 1999.7.13.)

참관단을 이끌었던 조엘 위트 국무부 북한 담당관은 “미국의 한 정보기관이 금창리 동굴에 핵시설이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언론에 흘려 문제를 자초했다”라며 “내가 당시 10명의 검증팀을 이끌고 동굴들을 뒤졌으나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분개했다. (박현, 「“과거 대북협상으로 한·미 실제로 이익봤다”」, 한겨레, 2013.6.4.)

결국 미국은 북한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세계적인 망신을 당한 꼴이 되었다. 북한의 기만전술에 놀아난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북한은 오래전부터 지능적으로 상대를 기만하는 작전에 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상대의 힘을 이용해 자기 힘을 적게 들이면서 상대를 제압하는 합기도를 보는 듯하다. 북한의 이런 전통적인 전법을 대단히 주시해야 한다.

이런 전법이 무서운 이유는 상대 지휘부가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판단이 과연 맞는지, 혹시 기만전술에 걸려든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므로 안개가 낀 듯 머릿속을 뿌옇게 만들어버린다. 실전에서 이렇게 되면 백전백패하고 만다. 따라서 북한의 전법을 파악하고 연구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3) 북한 최근 정책적 의지의 특징


가. ‘점령, 평정, 수복, 편입’


북한은 기존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폐기하고 ‘점령, 평정, 수복, 편입’ 정책을 공식화하였다. 이는 적대 관계를 전제로 하며 상대를 제거하겠다는 정책이다.

어떤 이는 북한이 작년부터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두고 한국을 인정하는 긍정적인 변화로 해석하던데 완전히 잘못된 해석이다. 북한은 남북관계에 관한 인식을 기존의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에서 국가 대 국가의 관계, 그것도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전환하였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즉, ‘통일해야 할 동족’에서 ‘제거해야 할 적’으로 바뀐 것이다.

북한의 새로운 대남 정책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매우 충격적이다. 북한은 기존의 평화통일을 잘못된 것으로 평가하면서 평화통일의 상징이었던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철거하며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겠다고 하였다.

이런 북한의 모습은 단순히 윤석열 정권이나 미국에 경고를 보내는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무력 평정을 통한 수복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나. 대남, 대미 군사 정책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피할 생각 또한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미국과 남조선 것들이 만약 끝끝내 우리와의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려 든다면 우리의 핵전쟁 억제력은 주저 없이 중대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며 그 결과 “전쟁은 대한민국이라는 실체를 끔찍하게 괴멸시키고 끝나게 만들 것”이며 “미국에는 상상해보지 못한 재앙과 패배를 안길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할 준비를 다그치면서도 미국을 향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디를 어떻게 하겠다는 언급이 없다.

이렇게 볼 때 전쟁이 나면 한국을 직접 공격해 초토화하는 것은 기본이며 미국의 경우 미국이 개입하는 정도에 따라 대응을 달리하면서 최대 본토 공격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 북한은 무력 평정 상황을 기다리고 원하는 듯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월 8~9일 중요 군수공장들을 현지지도하면서 “대한민국이 우리 국가를 상대로 감히 무력 사용을 기도하려 들거나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려 든다면, 그러한 기회가 온다면 주저 없이 수중의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고 하였다.

한국이 북한을 향해 한 발의 포라도 쏘면 북한은 “주저 없이” 핵무기를 쏟아부어 한국을 초토화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한국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을 ‘기회’로 본다는 점이다.

북한은 무력 평정을 바라고 있으며 무력 평정을 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북한은 무력 평정 상황을 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으며 한국이 전쟁을 일으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북한의 태도는 9.19남북군사합의서 파기 과정을 보면 더 뚜렷하다.

북한이 지난해 11월 21일 밤늦게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발사하자 정부는 다음날 곧바로 9.19군사합의 1조 3항 효력을 정지하였다. 그러자 북한은 하루 만에 국방성 성명을 통해 9.19군사합의 전체의 폐기를 선언해 버렸다. 그러면서 9.19군사합의에 따라 중지했던 군사 조치를 즉시 회복하고 나아가 군사분계선 지역에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하겠다고 했다. 마치 한국의 조치를 기다렸다는 듯이 전격적으로 움직였다.

9.19군사합의는 군사분계선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안전핀이다.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을 들고 있다가 놓치면 그대로 터진다. 안전핀을 없애는 것은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다. 그런데 한국이 안전핀을 살짝 건드리자 북한이 확 잡아서 완전히 빼버렸다. 마치 한국이 수류탄을 놓쳐서 터지기를 바라는 듯하다.

다른 하나는 한국이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는 물론이고 일으키려고 하기만 해도 전면전이라는 것이다.

전쟁의 조짐만 보여도 전면전을 통해 한국을 초토화하겠다는 게 북한의 의도, 의지로 보인다.

전쟁의 조짐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사실 지금 한미가 연초부터 항공모함을 대거 동원해 고강도 전쟁훈련을 하는 것도 전쟁의 조짐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직접 언급한 것들을 보면 북한은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과 한·미·일 연합훈련 실시 ▲핵협의그룹을 통한 핵전쟁 계획 수립 ▲미국의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상시 투입 ▲기록적인 전쟁훈련 ▲유엔사를 통한 다국적 전쟁기구 구축 ▲군사분계선지역의 ‘도발’ ▲한국군 재편·증강 등을 전쟁의 조짐으로 보는 듯하다.

 

핵무기를 대량생산하고 있는 북한.


한편 북한이 2022년 9월 8일 채택한 핵무력법에는 다섯 가지 핵무기 사용 조건이 있다.

첫째, 북한을 향해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파괴무기 공격이 시작되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미국이 핵공격을 하거나 하려고 하면 핵으로 반격한다는 뜻이다.

둘째, 북한 지도부와 핵무력 지휘기구를 향해 공격이 시작되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핵무력 지휘기구는 핵무기에 관한 결정부터 집행까지 전 과정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보좌하는 기구다. 핵무력법은 핵무력 지휘 체계가 위험에 처하면 사전에 결정한 절차에 따라 적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공격을 자동으로 즉시 단행하도록 규정하였다.

첫째 조건과 둘째 조건은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첫째 조건은 북한이 핵이나 대량파괴무기로 공격받거나 공격이 임박한 경우에 발동된다. 반면 둘째 조건은 핵이나 대량파괴무기가 아닌 일반 무기로 공격받거나 공격이 임박한 경우에도 발동된다. 그만큼 지도부, 핵무력 지휘기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북한의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이 시작되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넷째,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다. 즉, 재래식 전쟁을 하는 중간에 필요에 따라 핵무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북한이 발표한 내용들을 보면 전쟁의 개시와 함께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했으므로 이 조건이 실제 적용될 일은 없을 듯하다.

다섯째,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 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다. 예를 들어 2022년 7월 1일 북한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대북 전단을 통해 유입되었다고 발표하였는데 이런 경우도 핵무기 사용 조건이 될 수 있다.

어쨌든 북한은 “명백히 하건대 우리는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한미가 위에 열거한 조건만 잘 피하면 전쟁까지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전쟁의 빌미를 줄 것으로 보인다.

1월 2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윤 대통령이) 우리에게는 자위적이며 당위적인 불가항력의 군사력을 키우는 데 단단히 ‘공헌’한 ‘특등 공신’으로 ‘찬양’받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다. 특히 “9.19북남군사분야합의의 조항을 만지작거려주었기에 휴지장 따위에 수년간이나 구속당하던 우리 군대의 군사 활동에 다시 날개가 달리게 되었다”라고 했다. 또 “야유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부터 하는 말”이라고도 하였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이 담화를 두고 윤 대통령을 향한 ‘야유’와 ‘조롱’으로 치부했지만 사실 북한의 ‘진심’이 충분히 담겼을 수 있다. 북한이 신무기 개발 등 군사력을 강화할 때마다 윤 대통령의 대북 적대 정책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군사 행동을 두고 북한을 규탄하기보다는 ‘이게 다 윤석열 때문이다’, ‘윤석열이 위기 고조시키더니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많이 나온다. 전면전이 발발해도 ‘윤석열이 선제타격 운운하더니 기어이 일을 벌였다’라는 반응이 나올 분위기다.

북한 시각에서 윤 대통령이 ‘특등 공신’이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공헌’을 북한에 해줄 수도 있다. 아무래도 가장 큰 ‘공헌’이라면 북한이 원하는 전면전의 빌미를 주는 것이겠다. 최전방에서 고강도 전쟁훈련을 계속하다가 불꽃이 튀어 전면전이 될 수도 있고, 대북 전단을 살포하거나 확성기 대북 방송을 재개하다가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제일 위험한 지역은 서해다.

북한은 남북을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머지않아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영토 규정을 헌법에 담고 새로운 국경선을 선포할 것이다. 그러면 서해에도 국제해양법에 따라 영해선을 선포할 것인데 1999년 9월에 이미 선포한 ‘해상 군사분계선’을 그대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해상 군사분계선은 한국이 영해선이라고 주장하는 북방한계선(NLL)보다 남쪽에 있다. 따라서 북한이 주장하는 영해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해역은 남북 양측이 자기 바다라 주장하는 일종의 분쟁지역이 되어버린다. 국제사회는 국제해양법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다.

여기서 윤 대통령이 북한 주장을 받아들이면 ‘북한에 영해를 빼앗긴 대통령’이 되어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날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NLL은 영해선’이라 세뇌를 시켜놨기 때문에 보수세력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도 윤 대통령을 ‘북한에 영해를 빼앗긴 대통령’이라며 공격할 것이다.

따라서 윤 대통령은 죽으나 사나 ‘북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분쟁지역에 군함을 들여보내야 한다. 그러면 북한은 적군이 자기 영해를 침입한 것이므로 국제법에 따라 공격할 명분을 얻게 된다. 아마 곧바로 격침을 시도할 것이다. 전면전이 발발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북한에 빌미를 줄 수 있다. 미국의 전략무기가 수시로 한반도를 드나들고 고강도 한미연합훈련을 진행하는 것이 모두 핵공격의 빌미가 된다. 심지어 대북 제재도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 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다섯 번째 조건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북한은 전면전을 통한 무력 평정을 바라고 있으며 한미가 전쟁을 걸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걸 뻔히 알면서도 윤석열과 바이든 대통령은 대북 정책 전환을 하지 않고 전쟁의 길로 척척 걸어가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