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5.

먼저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의 개념부터 알아보자.

확장억제는 영어를 직역한 것인데 확장된 억지력을 뜻한다. 미국 본토에 대한 적대국의 핵공격을 막는 것을 직접억제라 하고,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핵공격을 막는 것을 확장억제라고 한다.

확장억제는 핵우산을 구체화한 것으로,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시험 뒤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 때 한국과 미국 사이에 확장억제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당시 미국은 확장억제가 핵우산과 다르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시험 이후 확장억제의 개념이 보강되었다. 2009년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미국의 핵우산, 재래식 타격 능력 및 미사일 방어 능력’ 같은 확장억제의 구성요소를 처음으로 명시했다.

한미는 2023년 4월 26일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워싱턴선언을 채택했다. 선언의 주요 내용은 ▲미국의 핵을 포함한 확장억제 공약 ▲핵협의그룹 신설 ▲미국 전략무기 정례적 전개 등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계기로 대북 전쟁열에 더 들떴다.

올해 들어 한미 당국은 한미연합훈련을 더 강화하면서 전쟁 위기를 높여가고 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의 확장억제력이 과연 작동할지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큰 기대를 걸고 무모하게 전쟁 분위기를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확장억제는 미국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


한국 정부는 한미 핵협의그룹에 대해 ‘기존 한미 확장억제 관련 협의체와 달리 핵 등 미국의 전략무기 정보를 사전에 공유받고 기획부터 실행단계까지 우리가 직접 참여한다’라고 설명해 왔다. 즉 한국이 원하면 언제든지 미국의 확장억제력이 작동될 수 있는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하이노 클링크 전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는 2023년 7월에 한미 핵협의그룹 첫 회의를 앞두고 “미국의 핵 능력은 주권적인 것이며 동맹국이 계획과 실행에 관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 평화연구소의 프랭크 엄 선임연구원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핵확장억지에 대한 결정은 미국 대통령이 내리는 것으로, 현장의 구체적인 사실 없이 대통령의 생각을 미리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한미 핵협의그룹은 조율과 계획을 위한 유용한 메커니즘이지만 확장억지에 대한 더 큰 확신을 원하는 (한국) 보수 엘리트들의 우려를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곧 미국의 확장억제는 미국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미국이 판단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을 맹목적으로 대하면서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미 실패한 핵확장억제


미국의 확장억제는 우선적으로 북한을 상대로 핵억제 강화를 목표로 해왔다. 그래서 북한의 핵개발을 방해했다. 하지만 북한은 핵개발에 성공했고,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어 전략 핵무기를 비롯해 전술 핵무기까지 실전배치하기에 이르렀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 대사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과 관련해 “북한은 전략 미사일 능력, 탄도미사일 능력을 계속 키우고 있고, 북한의 위협은 이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라면서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목표 겨냥을 완전하게 했고, 이 기술을 정교화했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결국 북한의 핵능력을 저지하려던 미국의 핵확장억제는 실패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수세에 빠졌다.

미국은 2022년 핵태세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 등 동맹국을 상대로 핵을 사용하면 “정권이 끝장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4월 한미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나 동맹, 파트너에 대한 북한의 핵공격은 용납되지 않으며, 그러한 행동을 취하는 어떤 정권이든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경고는 그 외에도 2023년 12월 15일 한미 핵협의그룹 2차 회의 뒤 발표한 공동성명을 비롯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미국은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북한에게 ‘전제조건 없이 대화하고 싶다’라고 밝히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이 미국과의 모든 대화 통로를 끊고, 대화 요청에 응답조차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본토가 공격당할 수 있다는 공포


2017년에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죽지 미국에서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반도 전쟁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의 처지가 바뀌었다. 북한이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15형 시험 발사에 성공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한반도에서 전면전쟁이 일어나면 언제든지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미국 본토에 날아갈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미국 자신의 피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공포로 되었다. 2018년에 하와이에서 가짜 탄도미사일 경보로 혼란이 일었던 일은 유명한 사례다.

1961년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면서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믿지 않았다.

조동준 서울대교수는 “북한의 핵능력 강화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확장억제를 약화시킨다. 미국이 핵보복을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공격 범위가 확대되면서 미국이 입게 될 피해가 커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히지만, 미국이 확장억제를 제공할 결의가 액면 그대로 수용되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조동준, 「북한의 핵능력 증가가 미국의 확장억제에 주는 함의와 대처방안」, 『한국국가전략』 vol.2 no.1 통권 3호, 2017.)

이처럼 미국이 본토에 북한 핵미사일 위험을 무릅쓰고 확장억제력을 제공해 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뒤떨어진 미 군사력


미국이 첨단 무기 경쟁에서 북한에 밀렸다는 분석이 이미 나왔다. 미국의 군사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극초음속 미사일, 유도 기능을 갖춘 다연장로켓, 각종 전술 핵무기 등 첨단 무기들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이 중 대량 생산에 들어가 실전 배치한 무기도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첨단 무기 개발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뒤늦게 성공해도 실전 배치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처지라고 한다.

또 이미 배치된 전략무기는 성능에 문제가 있다.

미국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미니트맨-3’은 2011년, 2018년, 2021년 등 여러 차례 발사 실패한 사례가 있었다.

2016년에 전략폭격기 ‘B-52’가 추락했고, 지난 1월에는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추락하는 등 각종 사고가 잇따랐다.

미군의 정신상태도 문제다.

북한은 전쟁이 다가오면 북한 군인들이 “자기의 주권 사수와 인민의 안전, 생존권을 수호”할 의지로 임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미군은 어떨까. 그들은 명분 없는 전쟁에 억지로 동원되어 사기가 바닥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아프간 전쟁에서 패해 야반도주한 미군의 모습을 봤다. 그런 그들에게서 강대국의 위용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미국은 다국적 연합훈련에 동맹국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올해 ‘시드래곤’(Sea Dragon) 훈련, ‘2024 코프노스’(2024 Cope North) 훈련, ‘2024 코브라골드’(2024 Cobra Gold) 훈련 등을 비롯해 연합훈련들이 진행되었고 계속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전쟁이 벌어지고 자국에 위협이 되어도 이 다국적 연합이 유지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럽 나라들은 미국의 강압으로 전쟁에 참여하면서도 대러 제재에 불참하기도 했다. 결국 미국 중심의 연합은 약화되었다.

한반도라고 해서 다를까. 미국의 패권이 약해지는 속에서 각 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지키려는 흐름을 깨기는 어려워 보인다.

허울 뒤에 감춰진 강대국 미국의 허약한 실체를 안다면 미국의 확장억제력이 허망한 것임을 간파할 수 있다.

 

 

이영석 주권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