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14.

2022년을 맞아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가 공동으로 신년기획을 준비했다. 첫 번째 주제로는 미러 간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다룬다.

 

 


미러 대결의 한복판…우크라이나에서 지금 무슨 일이?

 

 

 

미러 대결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와 그 주변 지도.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는 완충지대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대결이 촉발된 이유이기도 하다.

 


새해부터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에 10만 명이 넘는 군대를 배치, 이에 미국이 러시아에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른바 ‘우크라이나 사태’는 언뜻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러시아와 이를 막으려는 미국 사이의 ‘극한 대치’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미국의 패권이 저물 것이냐 말 것이냐와 관련한 정세가 긴밀히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대결의 파장은 유럽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배경과 결말을 전망, 앞으로 한반도에 미칠 파장까지 짚어보고자 한다.

지난해 12월 15일, 러시아는 미국과 나토(NTATO·북대서양조약기구) 측에 안전보장 조약안과, 안전확보 조치에 관한 협정안을 문서로 전달했다. 이 문서에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옛 소련권 국가를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나토 동진’ 중단 ▲러시아를 겨눈 중·단거리 미사일 공격 무기 배치 금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캅카스,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를 겨눈 나토군의 군사 활동 중단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미국은 ‘러시아야말로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한 군대를 철수해야 한다’, ‘나토는 개방돼 있다(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는 의미)’라면서 러시아의 제안을 단칼에 묵살했다.

이처럼 러시아와 미국의 공방 사이에는 우크라이나가 여러 번 등장한다. 그만큼 우크라이나가 첨예한 미러 대결의 한복판에 있다는 얘기다.

 


대결의 시작…‘열혈 친미’였던 푸틴이 ‘반미’로 돌아선 사연



그렇다면 어쩌다 러시아와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대결을 벌이게 됐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와 배경을 간략히 살펴봐야 한다.

한때 미국은 러시아의 평화와 안보를 지켜줄 든든한 초강대국으로 여겨졌다. 2000년 집권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그 누구보다 열렬한 ‘친미 인사’로 유명했다. 푸틴은 2000년 3월 <BBC>와 인터뷰에서 “동등한 상대로서 러시아의 견해가 받아들여진다면 나토 가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2007년 2월, 푸틴은 뮌헨 국제안보회의 연설에서 “나토 팽창은 유럽 안보 강화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서방과 러시아 간) 상호 신뢰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도발일 뿐”이라며 정반대로 말을 뒤집었다. 현재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는 나토를 경계, 반미·자주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열혈 친미 인사였던 푸틴은 왜 반미로 돌아섰을까? 여기에는 러시아와의 약속을 파기하고 러시아를 위협하고 나선 미국의 변심, 어깃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독일 통일이 논의되던 지난 1990년, 미국과 나토로 대표되는 서방 측은 나토의 군사력을 통일 독일 경계선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라고 소련과 약속했다. 나토 회원국인 서독을 중심으로 통일되는 독일이 소련과 맞닿으면, 소련의 평화가 크게 위협받게 된다는 우려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러시아가 공개한 보리스 옐친·빌 클린턴 기밀해제 문서에 기록돼 있다. 

소련 해체 뒤,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미국이 당연히 이 약속을 지키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후 미국은 ‘나토를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 없다’는 식으로 발뺌했다. 온 러시아가 충격에 휩싸였고 러시아의 안보 불안은 갈수록 높아졌다.

미국은 급작스러운 소련 해체로 혼란을 겪던 옛 소련권 국가들에 차례차례 접근해 미끼를 던졌다. ‘재정과 안보 지원을 해줄 테니 미국의 편을 들어 같이 러시아를 억제하자’고 말이다. 1999년에는 폴란드·체코·헝가리가, 2004년에는 불가리아·슬로바키아, 발트 3국 등 옛 소련 소속 7개국이 나토에 가입했다. 러시아의 시선에서는 소련 시절 한솥밥을 먹던 옛 동지들이 차례차례 적이었던 미국의 편으로 넘어간 셈이다.

미국과 나토의 대러 위협·무력 공세가 갈수록 노골화되면서 푸틴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는 ‘대미관계 재설정’에 나선다. 즉, 현재 러시아의 반미·자주 노선은 미국의 변심에 따라 고를 수밖에 없던 유일무이한 길이었다. 러시아 민중들도 푸틴 정부의 새로운 노선을 강력히 지지했다.

 


러시아의 ‘턱밑’ 우크라이나까지 닥친 나토의 위협



미국과 나토가 해를 거듭하며 동구권에서 영향력을 높여가면서 미러 간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2008년 들어 미국은 마침내 러시아와 바로 맞닿은 우크라이나까지 접근했다. 2008년 4월 4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발표된 나토 정상선언문 23조에서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염원을 환영하며 나토의 외무장관들이 (가입 절차의) 다음 순서인 맴버십행동플랜(MAP) 적용 시기를 결정한다”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대결은 이때의 앙금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미국의 편에서 러시아를 적대하고 있지만 본래 두 나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뿌리였다. 양국은 모두 현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에서 기원했다. 이후 몽골 지배 등을 거치며 갈라지긴 했지만, 러시아혁명 이후 소비에트연방(소련) 소속 국가로도 함께 해왔다. 그런데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미국이 개입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러시아의 관점에서 우크라이나는 외세의 침입을 방어할 수 있는 완충지대이자 최후의 방어선이다.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우크라이나 남쪽에 있는 흑해는 유럽 중심을 흐르는 지중해, 중동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바닷길이다. 그런데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이용해 러시아를 위협·억제하려 한다.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에서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러시아 주변 지리를 보여주는 지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서쪽 국경과 바로 맞닿아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는 수도인 키예프,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반러·친미’ 시위가 벌어졌다. 그 결과 친러 성향이던 대통령과 총리가 한꺼번에 물러났다. 이 사건에는 미국이 친미 시위대의 뒷배로 있었다는 의혹이 적잖다.

우크라이나에 들어선 친미 정권은 러시아를 적대했다. 민족 구성과 언어도 비슷한 두 나라의 사이가 지금처럼 적대와 갈등에 빠지게 된 건, 러시아를 경계하고 억제하려는 서방의 간계가 한몫 거들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19년 2월에는 친미파 일색인 우크라이나 정부와 의회가 우크라이나의 EU·나토 가입을 명문화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같은 해 5월, 대통령을 풍자해 인기를 끌던 ‘코미디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대놓고 ‘친미’ 노선을 표방, 러시아를 적대했다. 또한 젤렌스키는 정부 고위 인사를 코미디언 시절 동료들과 일가 친척들로 채우는 국정농단에 몰두했다. 무능과 부패로 상징되는 젤렌스키의 집권은 친미 국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혼란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분명한 사실은 우크라이나마저 나토에 가입해 러시아를 적대하게 되면 러시아로서는 유럽에 겹겹이 포위돼 옴짝달싹하기 힘든 형국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로서는 국운이 걸린 문제로, 온 힘을 다해 막아야만 하는 중대 사안이다. 결국 오늘날까지 벌어지는 미러 대결은 하나부터 열까지 미국이 자초한 셈이다.

이제 수수께끼가 하나 남는다. 미국은 왜 러시아와 맺은 약속을 깨면서까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구권 국가에 대러 적대 전선을 구축하려 했을까? 이는 서방의 위기와 관련이 깊다.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자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자유주의·제국주의 진영은 겉으로는 ‘자유주의가 승리했다’라고 으스댔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기나긴 냉전과 대결로 서방 사회의 안팎은 곪을 대로 곪아 터지기 직전이었다. 오죽하면 ‘소련이 망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먼저 망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서 서방은 러시아를 공동의 적으로 삼는 한편, 소련 해체로 무주공산이 된 동구권으로 야금야금 영향력을 뻗어 나가는 수작을 부렸다. 서방은 나토의 이름으로 러시아를 배제하고 동구권을 장악, 경제·군사 이익을 한 손아귀에 넣었다. ‘어디 해볼 테면 해봐’라고 상대가 마구 덤벼 드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봐야 미국과 나토를 향한 러시아의 반발과 공세의 맥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그렇다면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벌어지는 미러 대결의 양상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대략 두 가지 경우의 수로 전망해볼 수 있을 듯하다.



경우의 수 1 : 러시아 승리…크림반도 합병 재현?

 

 

 

크림반도 주변을 보여주는 지도. 우크라이나 남쪽, 흑해로 돌출된 크림반도는 유럽과 중동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서방의 영향을 받은 국내외 언론에서는 지난 2014년 크림반도 합병의 사례를 들며 러시아가 연초에 끝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그런데 러시아가 정말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겠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자면 먼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침공이라는 말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다.

지난 2014년 3월, 러시아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됐다. 당시 크림반도에 있던 ‘크림 자치 공화국’은 우크라이나 연방 소속이긴 했지만, 독자 행보를 할 수 있는 재량권·자치권이 있었다.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 자치 공화국 총리가 앞장서 “모두 함께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 선택을 하자”라며 ‘크림 자치 공화국의 러시아 귀속’을 묻는 주민 투표를 독려할 정도였다.

당시 서방 언론은 러시아군이 언제라도 크림반도를 ‘침공’해 합병할 수 있다며 공포 분위기를 부추겼지만, 정작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다. 따라서 크림반도 합병을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합병’이라는 표현은 사실관계와도 아예 맞지 않는다.

크림반도에서 벌어진 주민 투표에서 투표율은 83.1%에 육박했고, 그 가운데 무려 96.8%에 이르는 주민들이 러시아 귀속에 찬성했다. 크림반도 주민의 60% 남짓이 러시아계인 점에서, 우크라이나계 주민 대다수도 러시아 귀속에 찬성했음을 알 수 있다. 투표가 가결되자 수천 명이 넘는 주민들이 광장에 모여 러시아기를 흔들며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이처럼 크림반도에서는 서방 언론이 말하는 침공, 전쟁 같은 살벌한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러시아에 ‘스스로 합병’된 지난날 크림반도의 연장에서, 올해 초 러시아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도네츠크, 루간스크)까지 러시아 영향 아래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드네프르강 동쪽에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 대체로 러시아 귀속을 찬성하고 있다. 앞으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크림반도 합병 때와 비슷한 자발적인 독립 투표가 벌어지는 장면도 상상해볼 수 있다. 러시아 스스로 여러 차례 강조해왔듯,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러시아군이 대러 적대 공세를 벌이는 나토군을 경계하는 등,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는 있을 것이다.

 

 

위 우크라이나 지도에서 우크라이나 한복판을 가로질러 흑해로 뻗어 나가는 강이 드네프르강이다. 이 드네프르강을 기준으로 동쪽에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우크라이나계 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서부와, 러시아계 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동부 간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다.



과거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오바마 정권은 러시아를 겨눠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주민들이 러시아연방 소속이 된 크림반도의 새 출발을 기뻐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미국의 무기력함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의 친미 정권을 지켜주기엔 미국의 기세와 힘이 무척 초라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요청에도 미군을 파병하지 않겠다”라며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극구 꺼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집단안보 원칙을 규정한 나토 헌장 제5조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나토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러시아를 향해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외교(회담)를 통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병력 철수, 둘째는 ▲북한·쿠바·이란에 한 것과 버금가는 강력한 대러 경제 제재다. 그 어디에도 러시아와 맞서 전면 대결을 펼치겠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나토의 대장’인 미국이 발을 뺀 상황에서 나토 국가들끼리의 대러 전면전이 펼쳐질 가능성은 무척 낮아 보인다. 설령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진입해 우크라이나군과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더라도, 나토는 최대한 군사력 행사를 자제하고 형식적인 소모전·물자 지원 정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무조건 승리가 확실시되는 이유다.



경우의 수 2 : 무승부는 없다…러시아의 대유럽 영향력 강화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러 간 미지근한 합의로 현상 유지, 무승부에 머물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을 향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러시아의 의도는 최근 미러 회담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 1월 1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러 외교차관급 회담 직후,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협상이 결렬될 경우를 예시로 들며 이렇게 강조했다. 

 

 

“군사적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불가피하게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의 안보에 타격을 줄 것이다.”

 

 

반면 랴브코프의 맞상대였던 미국의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이 대북 제재에 버금가는 제재를 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라며 전면 대결 가능성을 일축했다. 미국은 오직 러시아를 향한 강력한 경제 제재, 그것도 ‘가능성’만 앵무새처럼 외치고 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회담이 지지부진하고 이대로 대치가 계속된다면 러시아는 랴브코프의 말대로 미국과 나토를 겨눈 군사적 대응, 타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건 러시아가 미국과 나토를 상대로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는 점이다.

이번 대결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면 동구권 국가들이 나토에서 차례차례 발을 빼게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이 빠져나간 자리에 빈 공간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 텅 빈 공간에 러시아와 국가 통합을 추진하는 벨라루스와, 미러 대결의 결과 ‘친러’로 돌아설 것으로 보이는 우크라이나를 한데 엮은 ‘범슬라브 전선’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라는 창이 유럽을 겨누게 된다. 미국과 나토로서는 완전히 수세에 몰리게 되는 국면이다.

 

 

 

슬라브계 국가인 러시아(RUSSIA), 우크라이나(UKRAINE), 벨라루스(BELARUS) 3국이 협력해 서쪽의 나토군을 겨누게 되면, 나토군을 동원해 러시아를 억제하려던 미국의 구상이 수세에 몰리게 된다.



러시아와 유럽 사이의 안보 관계 변화도 주목된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물밑에서, 미국을 제외한 ‘유럽군’을 따로 꾸려 운용하자는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면 미국의 지도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나토 회원국으로서 미국과 함께하던 유럽 각국이 나토에서 줄줄이 탈출, 러시아와 안보 조약을 체결할 수도 있다. 러시아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동안 미국의 방해로 지지부진하던 러시아와 유럽의 에너지·자원 협력도 본격 물꼬가 트일 수 있다. 지금은 미국의 방해로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저 천연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 가동이 시작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이번 대결에서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협력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효율 높은 러시아의 에너지를 중심으로 러시아·유럽 사이에 평화와 번영의 청사진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 어떤 경우의 수를 봐도 미국의 패배는 기정사실로 보인다. 미국이 뭘 하든 앞으로 우울함과 근심이 깊어질 뿐이다.



마치며 :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밀어닥칠 파장



앞으로 미국과 나토를 겨눈 러시아의 군사적 대응과 타격은 우크라이나 너머 전 세계 곳곳에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보여주는 분명한 실마리가 있다. 지난 13일 (현지시간) 랴브코프는 러시아어 국제 TV 방송 <RTVi>와의 대담에서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 그들(서방)이 결국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협상에 실패한다면, 어떤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라면서 “협상이 실패할 경우 쿠바나 베네수엘라에 군사 인프라(기반시설)를 구축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미국을 향한 러시아의 최후통첩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지난해 전 세계에 충격을 던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야반도주’에 뒤이어 미국의 몰락을 보여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다. 몰락에 추락을 거듭해온 미국의 패권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분기점으로 기세가 크게 꺾일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전 세계 곳곳에서는 좌충우돌, 우왕좌왕이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승리가 우리에게 미칠 파장을 짚어보자. 먼저 대만을 두고 중국과 미국이 벌이는 대결 국면에서 중국이 유리한 고지에 설 전망이다. 합동군사훈련을 벌일 만큼 러시아와 밀접한 중국의 승리는 미국이 대만과 남중국해를 고리로 중국을 견제해오던 인도·태평양전략의 붕괴, 파산을 뜻한다.

대만에서 미국의 전선이 무너지면, 미국의 마지막 동북아시아 방어선인 주한미군의 존립도 흔들리게 된다. 이런 정세에 따라 한국에 자주와 민족대단결의 훈풍이 상륙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국내 각계에서 ‘미국은 답이 아니다’라는 여론이 확산할 것이다. 남북이 협력해 새로운 길을 열어내자는 민족자주의식도 드높아질 것이다. 우리 땅을 자기 집 마냥 드나들며 한국의 전작권을 틀어쥔 주한미군과 유엔사의 감축·철수 가능성도 주목해 봄 직하다.

아울러 70년 넘게 대북적대 정책에 목을 매온 친미 적폐세력의 입지도 크게 좁아질 것이다. 특히 한미일 군사안보협력 운운하며 ‘대북 선제타격’을 강조하고 나선 윤석열, 국힘당 같은 친미 적폐세력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와 비례해서 민족자주, 평화번영통일을 외쳐온 진보진영이 민심의 성원을 받는 절호의 기회도 엿볼 수 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파장을 단단히 예의주시해야 한다. 걷잡을 수 없는 큰 파도가 밀어닥치기 전에 ‘한반도를 지켜주는 빛 샐 틈 없는 한미동맹’이라는 가짜 신화부터 깨부숴야 한다. 민족 자주, 반미 공조라는 분명한 해법을 두고 미국이라는 낡은 동아줄을 마냥 붙들기에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