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6.

(이어서) 북미 직접 대결, 미국이 패배한 날 ⑥

 

 

 

 

1980~2000년대에는 북한 인민군이 미군의 정찰기와 헬리콥터를 격추하거나 요격하는 사건이 있었다. 3가지 사건을 통해 북한과 미국의 대비되는 반응을 살펴본다.

 

1. 공격받은 미 공군 SR-71 고공정찰기: 1981년 8월 26일

 

1981년 8월 26일, 인민군이 미 공군 SR-71 ‘블랙버드’ 고공정찰기에 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SR-71은 격추당하지 않았고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으나, 미국이 받은 충격은 컸다.

 

 

▲ SR-71B 블랙버드. © 미 공군

 


SR-71은 북한을 자극하다가 공격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SR-71이 비무장지대를 날고 있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미 국방부 대변인은 “정찰기는 한국 영공과 공해 상공을 날고 있었다”라면서도 “정찰에 관한 자세한 항로는 밝힐 수 없다”라고 모호하게 답했다.

또 미 국방부 대변인은 “(SR-71의) 기체에는 아무런 손상도 없었고 SR-71은 (기지로) 무사히 돌아왔다”라며 미국이 북한의 공격에 당하지 않은 점을 강조했다.

당시 SR-71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정찰기’였다. 미국은 SR-71의 최고 속도가 마하 3.5(시속 4,290킬로미터)에 이르며, 2만 4천 미터 고공을 날아다녀 어떤 대공미사일로도 격추할 수 없다고 자신했다. 이랬던 미국은 막상 SR-71이 북한에 공격받자 격추당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이 정확히 어디에서 어떤 종류의 미사일을 발사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SR-71 조종사들이 “기체에서 몇 마일 떨어진 거리에서 비행 구름과 함께 뒤이은 공중 폭발을 목격하고 이를 보고했다”라고 밝혔다. 이 보고를 근거로 미 국방부는 뚜렷한 근거 없이 북한 내 여러 미사일 기지 중 한 곳에서 대공미사일이 발사됐을 것으로 짐작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 맞다면 이를 ‘도발’로 보고 대응할지 말지를 검토했다. (「북괴, 미고공정찰기를 미사일로 공격」, 중앙일보, 1981.8.27.)

당시 미 대통령 정책총괄 고문인 에드윈 미즈는 레이건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여겼지만, 국방부로부터 사건을 평가할 자세한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국방부의 평가에 달려있다’고 했다. (「미국방성 북괴 미정찰기 공격」, 매일경제, 1981.8.27.) 

미사일의 제원을 파악하지 못한 국방부에 기댄 레이건 정부의 태도에서 미국의 처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결국 레이건 정부는 북한에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2017년 기밀해제 된 미국 측 자료에 따르면 SR-71이 실제로 북한 영공을 침범했음이 밝혀졌다.

어쩌면 미국은 북한에 미사일을 발사한 책임을 물으려 할수록, 오히려 북한에 당하게 되리라는 판단에 사건을 덮었을 수 있다. 

이미 미국은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1968년), EC-121 격추 사건(1969년) 때 북한에 영해·영공 침범을 인정하며 사과까지 한 바 있다. 미국으로서는 영공 침범을 인정하며 또다시 망신당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을 법하다.

 

 

2. 주한미군 헬리콥터 OH-58 격추 사건: 1994년 12월 17일

 

 

1994년 12월 17일, 인민군이 북한지역 강원도 금강군을 날던 미8군 17항공여단 501대대 소속 헬기 OH-58을 격추했다. 당시 데이비드 하일먼 준위가 사망했고, 살아남은 바비 홀 준위는 인민군에게 13일 동안 붙잡혔다. 

 

 

▲ 격추당한 OH-58. 왼쪽이 하일먼 준위의 시신, 손을 든 오른쪽 인물이 홀 준위다.

 


격추는 인민군이 북한 영공을 침범한 OH-58에 대응하며 벌어졌다.

12월 17일 북한 언론은 긴급 보도에서 “오늘 10시 45분경 적 직승기(헬리콥터)가 전선 동부 군사분계선을 넘어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 지역 상공 깊이 불법 침입했다”, “우리의 사회주의 조국의 영공을 경각성 있게 지키던 조선인민군 고사포병들의 자위적 조치에 의해서 단발에 적 직승기는 우리 측 지역에 격추됐다”라고 보도했다.

북한이 격추에 쓴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의 이름은 ‘화승총’이라고 한다. 화승총의 이름은 조선 시대에 사용된 노끈에 불을 붙이는 방식의 총에서 따왔고 사거리는 10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북한 화승총, 미국 정찰기 격추」, 경남신문, 1999.12.17.)

북한이 자체 개발한 화승총은 미국의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인 스팅어 미사일과 유사한 구조로 추정된다. 최신형 스팅어 미사일에는 열을 감지할 수 있는 적외선 탐지 장치가 부착됐으며, 레이더를 피해 낮게 나는 비행체를 격추하기에 유용하다.

당시 상황과 관련한 탈북자의 증언도 있다.

OH-58이 북한으로 넘어왔을 때, 근처에서 인민군 보병연대 직속 화승총 소대가 새로 공급된 화승총으로 훈련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병사가 실전에 도입되지도 않은 ‘교육용 신형 화승총’으로 OH-58의 꼬리 프로펠러를 정확히 맞춰 격추했다는 것이다. (「[북 상용무기1] 북 화승총 대공미사일의 위력」, 자주시보, 2017.5.3.)

이를 볼 때 북한은 높은 수준의 지대공 미사일 기술력과 대응력을 갖췄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격추 초기 미 정부는 북한의 보도를 반박하며 OH-58이 의도치 않게 ‘비상 착륙’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과 협상 과정에서 미군 조종사들이 영공을 침범한 것은 맞지만 지형을 잘 모르는데 눈도 내려 실수로 넘어갔다며 말을 바꿨다. (「미군헬기 DMZ북방 불시착」, 서울신문, 1994.12.18.)

격추 초기에 미국이 ‘OH-58은 비상 착륙한 것’이라고 한 점에 관해서는 강대국으로서의 체면을 지키려는 판단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경남신문, 위의 기사.) 이는 미국이 격추를 숨기려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인데, 곧 격추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오히려 더욱 망신살을 뻗친 꼴이 됐다.

OH-58의 교신 기록에 따르면 춘천에서 이륙한 OH-58은 군사분계선을 따라 지형숙지훈련 중 남방한계선 바로 아래에 있는 향로봉 서북방 10킬로미터 상공에서 산등성이를 돌더니 갑자기 북한지역으로 넘어갔고, 그 순간 통신이 끊겼다고 한다. (「미군헬기 DMZ북방 불시착」, 서울신문, 1994.12.18.)

이런 정황을 통해 OH-58 조종사들이 일부러 북한지역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만약 OH-58이 고의로 북한지역으로 넘어간 것이 맞다면, OH-58은 북한의 정보를 수집하는 작전 중 격추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자국 장교가 사망한 심각한 사건이었지만 미 정부는 시종일관 북한에 밀려 쩔쩔매는 반응을 보였다. 

격추 사건 직후 북미 간 하일먼 시신과 홀의 송환을 둘러싸고 협상이 진행됐다. 

북한은 먼저 12월 22일 오전 10시 판문점을 통해 하일먼의 시신을 미국으로 보냈다.

12월 24일 주한미군사령관 개리 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으로 ‘유감’을 표하는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하일먼의 유해 송환에 관한 감사, 사고 재발 대책을 약속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이틀 뒤인 12월 26일, 백악관은 OH-58이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서한도 추가로 보냈다. (「주한미군 사령관, 김정일에 유감 표명」, KBS, 1994.12.24.)

미 정부가 내내 저자세를 보였지만 북한은 홀을 풀어주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홀은 12월 30일 북한 측에 사과문과 자백서를 제출했다.

홀은 자백서에 “(영공 침범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엄중한 침해이며 국제법에 대한 난폭한 위반”, “불법 침입 행위를 관대하게 용서”, “부모 처자들을 만나게 해주기를 애원한다” 등의 내용을 적었다.

또 홀은 북한 언론과 대담을 통해 발표한 「나의 체험으로 권고한다」라는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북한 영공을 불법 침입했다가 귀국의 포로 관대 정책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송환되는 본인으로서 확언하건대 북한은 자위로 단호하면서도 잘못을 진실로 인정하고 사죄하면 누구에게나 관대한 나라이다. 따라서 기어코 북한을 반대하다가 막다른 궁지에 가서야 때늦은 관용을 바랄 생각 말고 애당초 죄를 짓지 않는 것부터가 인도주의와 관용에 대한 응당한 도리라는 것을 반북 적대 의식에 만연된 미국과 한국의 정치인, 군인들에게 부디 권고하고 싶다.”

 

 

 

▲ 북한이 OH-58 격추 이후 날린 전단에서 언급된 대담 기사 내용. © Propaganda Leaflets of North Korea

 

미국의 관점에서 굴욕적인 자백서를 쓴 홀은 12월 30일 마침내 풀려났고, 판문점을 거쳐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자국 헬기가 인민군에 의해 격추당했음에도 미국이 상당히 수세에 몰려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저자세를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로, OH-58의 북한 영공 침범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과거 푸에블로호 사건, EC-121 격추 사건 당시 영해·영공 침범을 인정하며 사과하는 등 북한에 호되게 당한 미국으로서는 이번 사건을 빨리 덮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두 번째로, 북한의 강도 높은 전쟁 준비 태세를 꼽아볼 수 있다. 

앞서 북한은 1993년 3월 핵확산방지조약에서 탈퇴한 뒤, 같은 해 5월 중거리 미사일 노동-1호를 시험발사했다. 이에 클린턴 정부는 1994년 들어 대북 선제공격을 검토하며 공격 날짜까지 정했다. 그런데 전면전이 발발하면 90일 이내에 주한미군 5만 2천 명이 사망하는 등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된다는 컴퓨터 모의 전쟁 결과가 나왔고, 미국은 선제타격을 포기했다. (「“서울 불바다 되지만 北선제공격” 美대통령마다 준비한 카드」, 중앙일보, 2020.9.19.) 

이를 볼 때 미 정부는 OH-58을 통해 북한의 대응 수위를 살펴보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3. 미 공군 정찰기 RC-135S 요격 사건: 2003년 3월 2일

 

 

2003년 3월 2일에는 북한 전투기 미그-29가 동해상에 있던 미 공군 소속 정찰기 RC-135S를 레이더로 요격(공격해 오는 대상을 기다렸다가 맞받아치는 것)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 RC-135S 코브라볼. © 미 연방정부



북한은 이와 관련해 정당한 대응을 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국은 인민군 전투기가 동해안 공해 상공에서 RC-135S를 북한으로 유인하며 위협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RC-135S 2대는 북한 영공에서 241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날고 있었다. 그런데 미그-29 전투기가 30미터까지 다가와 날갯짓을 하더니 인민군 조종사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는 수신호를 여러 차례 보냈다. 전투기의 날갯짓은 자신을 따라오라는 뜻, 엄지손가락 수신호는 고도를 낮추라는 뜻이다. 하지만 RC-135S가 인민군의 요구를 받지 않고 동남쪽으로 급히 방향을 틀자 80킬로미터 후방에서 미그-23 2대와 미그29 1대가 쫓아왔다. 

특히 미그-29는 RC-135S에 15미터까지 따라붙어 앞을 가로막고 화기지원 레이더를 조준했는데, 조준이 빗나가자 애프터버너(전투기 재연소 장치)를 점화해 속도를 끌어올리며 위협했다. 그 뒤 인민군 전투기가 북한쪽으로 철수했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당시 RC-135S를 몰았던 랜디 거친 대령은 ‘오마하 월드 헤럴드’가 보도한 2003년 11월 17일 자 대담에서 “북한 전투기들이 열추적 미사일을 발사할 것으로 생각했다. 10분 동안은 내 생애 중 가장 고군분투한 시간이었다”라며 “미사일을 맞고 추락할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거친은 “당시 상황이 벌어져 종료되기까지 22분 동안은 내 생애에서 가장 위태로운 순간이었다”라며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로 무사히 귀환한 뒤 3일간은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2003년 美 RC-135 정찰기 북한 갈 뻔”」, 연합뉴스, 2005.11.18.)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라는 거친의 ‘솔직한 고백’에서 북한을 향한 두려움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미국은 RC-135, U-2S, RQ-4B(글로벌호크) 등 정찰기를 북한 주변으로 들여보내 정탐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은 2023년 7월 10일 국방성 대변인 담화 「위험천만한 미국의 도발적 군사활동들을 주시한다」를 발표했다.

담화는 미 정찰기들이 동해와 서해상에서 여전히 정탐 활동을 하는 점을 거론하며 “최근 미국은 각종 공중정찰 수단들을 집중 동원해 조선반도[한반도]와 그 주변지역에서 적대적인 정탐 활동을 유례없는 수준에서 벌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방대한 무력이 대치되어 있고 핵 대 핵이 맞서고 있는 조선반도에서 적대국의 간첩 비행기들이 교전 일방의 영공에 바투 다가설수록 어떤 위험이 뒤따르게 되겠는가 하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라면서 “영공까지 무단 침범하며 광란적으로 벌이고 있는 미국의 도발적인 공중 정탐 행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 공군 전략정찰기가 조선 동해상에 격추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라고 경고했다. 

담화는 EC-121 격추 사건, OH-58 헬리콥터 격추 사건, RC-135S 요격 사례를 들며 미국에 경고했다. 하나같이 미국이 북한에 꼬리를 내린 사건이다.

한국전쟁 이후 벌어진 북한과 미국의 직접 군사 대결에서는 모두 미국이 패배했다. 또다시 한반도 주변에서 북미 대결이 벌어진다면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끝)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